문화일반

[김유정 탄생 100주년]<4>김유정과 어머니 청송 심씨

어머니 죽음으로 불행의 길 빠져들어

◇김유정의 어머니 사진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지금까지 공개된 김유정의 유일한 가족 사진으로 김유정이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고향 춘천에 내려온 1931년(23세)에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김유정, 둘째누님 김유영, 조카인 김영수씨.

어떤 작가든 그가 성장한 환경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러한 삶의 배경속에서 몸에 밴 기억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걸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어진다.
김유정이 빼어난 문학작품을 남겼지만, 결혼도 못하고 29세의 일기로 마친 생애는 불우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 짧은 일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어머니다.

김유정은 일곱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김유정의 생애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불행의 길로 빠져들었다는게 김유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유정이 평생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모했던 심리는 모성 콤플렉스로 나타나고, 일곱살 연상의 박녹주를 짝사랑하는 일로 전개됐다.

김유정연구 1호박사인 유인순교수(강원대국여교육과)가 펴낸 ‘김유정을 찾아가는 길’23∼24쪽에 그런 증언이 실려있다.

“유정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박녹주에게 짝사랑을 바치기도 하고, 젖먹이 딸린 들병이를 따라다니는가 하면, 잡지에서 같은 글이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박용철의 누이동생인 박봉자에게 30통이 넘는 편지를 쓰고, 소설가 최정희씨에게 호의를 느끼며 술과 방화의 날을 보냅니다.

이들이 유정의 육체적 건강을 해치게 하고, 그를 요절하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과 숙명적 우울, 이러한 상태에서 김유정은 주위 여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그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논지다.

강원일보 논설주간을 지낸 문학평론가 김영기씨가 펴낸 ‘김유정, 그 문학과 생애’에 어머니 청송심씨(靑松沈氏)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난다.

김유정의 어머니 청송심씨는 춘천 두름실(지금의 학곡리)에서 고종7년인 1870년에 태어났다.

탄생한 날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청송심씨 가문은 김유정의 어머니대에 두름실에 이주해 살아온지 5대째였다고 한다.

대룡산자락 안화산 밑 두름실에서 심화택의 2남1녀중 막내로 태어난 심씨부인은 어려서 부터 총명하여 오빠들이 배우는 글공부를 어깨너머로 배웠다.

특히 둘째 오빠였던 심상연의 학문이 빼어났는데, 이 오빠도 총명한 여동생이 글을 익히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김유정의 외삼촌인 심상연은 말씨가 재재하고 학식이 높아 두름실에서는 학자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거리가 멀지 않은 외가였기에 어린시절 유정은 어머니와 함께 자주 방문했다.

춘천부내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자 세력가였던 김도사댁 귀염둥이 손자였으므로 유정은 외가에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외삼촌 심상연은 누이동생을 특별히 귀여워 했던것 처럼 조카인 김유정도 예뻐했다고 한다.

외삼촌 심상연의 학식이 유정에게 전해졌음은 당연지사.

잘생긴 김유정은 이 시절 붙임성도 좋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고 한다.

유인순교수의 책 24쪽에는 “유정은 친구인 안회남에게 어머니의 사진을 보이며 미인이라고 하나 김영수(김유정의 조카)씨가 증언하는 모습은 조금 다릅니다”라고 적혀있다.

이어지는 인용문은 이렇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 여인으로선 큰 키에 기름한 얼굴이며 벗겨진 이마와 올라간 눈귀가 남자의 상에 가까우며 눈초리의 날카로움이 성격의 팔팔함을, 그리고 꼭 다물어진 얇은 입술이 의지의 굳건함을 엿보게 했습니다.

이렇게 남이 보면 애정은 고사하고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여인이건만 그는 그분에게서 정열과 샘솟는 듯한 기쁨을 찾아낸 것입니다.” 어린 김유정에게 어머니, 여인은 강건하고 굳건해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음을 알게하는 구절이다.

만석지기 지주집안이었고 서울에도 100여 칸 되는 집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아홉 살 때는 아버지를 여읜 뒤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다.

더욱이 집안을 책임지고 있던 큰형의 분방한 생활로 말미암아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김유정의 자전적 소설 ‘형’에는 아버지의 삼화의 원인이 어머니의 사망에 있었다고 적혀있고, 소설 ‘생의 반려’에서는 주인공 이명렬이 친구에게 “난 어머니가 보고싶다”고 외친다.

작가인 김유정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음을 알게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김유정 자신이 말하는 ‘그리움’ 이란 모두 ‘어머니에 대한 환상’ 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절대자처럼 각별했던 어머니를 잃은 환경에서 김유정은 점차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말더듬이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이같은 언어장애 현상 속에 김유정 특유의 표현 의욕이 잠재해 있었을 것” 이라고 작가의 심리적 특성을 말하기도 했다. 용호선기자 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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