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게 거짓말 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목숨 끊어
…
태종과 운곡 역사도 '고스란히'
강림면 강림2리 노구소 마을.
횡성읍에서 양장구절같은 전재를 넘어 강림면에 들어서면 치악산 자락에서 순박한 웃음과 얼굴을 가진 강원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56세대 185명의 주민들이 한집안처럼 오순도순 살고 있는 노구소 마을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노구소마을은 지금은 강림면이지만 한때는 안흥면, 그리고 영월군 수주면에 속해 있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가깝게는 횡성군을 비롯해 강원도는 물론 전라도, 6·25전쟁 당시 북한 함경도에서 피난 내려온 주민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횡성에서는 노구소마을을 충절과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라고 부른다. 600여년 전 조선 2대 왕인 태종 이방원과 운곡원천석선생, 그리고 노구할미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말 4처사의 한 사람으로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운곡 원천석선생은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에 실망과 분노를 느껴 모든 관직을 버리고 개성을 떠나 강림리로 숨어들었다. 이에 태종은 임금으로 등극하기 전인 1415년 옛 스승인 운곡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를 의논하기 위해 험한 산골이었던 강림리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운곡은 태종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치악산 골짜기로 몸을 숨기며 때마침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노파에게 자신을 찾는 사람이 오거든 횡지암 쪽으로 갔다고 일러 주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반대 방향인 변암쪽으로 피신했다. 노파는 운곡의 말대로 태종에게 거짓을 고했고 결국 태종은 끝내 운곡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태종은 임금으로 등극했으며 뒤늦게 자신이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노파는 임금을 속였다는 죄책감에 빨래를 하던 바위 아래 소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이 노파가 빠져 죽은 소를 '노구소'라고 부르고 매년 이 노파에 대한 제를 올려왔다.
태종이 머물던 곳은 '주필대'라고 불리다 방원이 태종으로 등극하자 '태종대'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태종이 스승을 만나지 못한 뒤 예를 갖춰 절을 했다는 '배향산'과 임금의 수레가 넘었다는 '수레넘이 고개', 그리고 운곡이 머물렀던 '변암' 등이 노구소 마을과 600여년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충절과 역사를 간직한 노구소마을 주민들은 요즘 올해 처음 시작한 새농어촌건설운동 준비에 여념이 없다.
주민들은 올해 초 전찬수 이장을 추진단장으로 위촉하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전 주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휴경지를 공동 경작해 마을 기금을 만들고 마을을 상징하는 CI제작을 비롯해 마을 주요도로변 꽃길조성, 노구사당과 태종대 환경정비, 노구소 벽화제작 등 이미지 변신은 물론 이곳을 찾는 관광객 및 외지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참살기좋은마을 가꾸기 우수마을, 미래청정법인 횡성 우수마을 선정 등 각종 포상도 잇따라 받았다.
185명의 주민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55명으로 전체인구의 30%를 차지하며 초고령화에 접어든 노구소마을 주민들은 새농어촌건설운동 이외에도 2011년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에 도전 중이다.
이재용 노인회장을 주축으로 구성된 노구소마을 노인회는 지난 겨울 마을회관에 모여 볏짚과 싸리로 맷돌방석인 맷방석을 비롯해 싸리로 만든 삼태기인 어렝이, 복조리, 짚신, 똬리, 종다래끼, 쇠멍 등 다양한 공예품을 제작 전시, 판매하고 있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농악 및 전통사물놀이와 젊은층을 위한 과줄과 절편 등의 전통음식 체험행사도 펼친다.
전찬수이장은 “우리 마을은 조선 초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강원도내 대표적 충절의 고장”이라며 “마을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치악산과 역사·문화유적을 활용한 농촌관광 활성화 등 잘사는 농촌만들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횡성=이명우기자 woolee@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