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출간된 무위당(无爲堂) 장일순(1928~1994년)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시골살림 간)' 38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꾸 떨어져도 괜찮아요. 떨어져야 배워요. 댓바람에 붙어버리면 좋을 듯싶지만 떨어지면서 깊어지고 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법이에요. 남 아픈 줄도 알게 되고….” 사람이 세상을 뜨고 나면 곁에 있던 사람도 흩어지는 게 인심이다. 화려했던 권세는 그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그 반대인 경우가 진정한 위인들이다. 이들에게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사람이 더 몰려든다. 장일순이 그런 존재다.
▼원주가 한국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대접받는 것은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원주캠프'라고 한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장일순이다. 그는 유불선(儒佛仙)에 기독교까지 통합하는 해월 최시형의 겨레사상을 이어받아 생명사상을 실천했다. 제자인 김지하 시인은 “접화군생(接化群生), 만물을 다 껴안고 살려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20대 초반, '원 월드 운동'에 참여해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받은 일도 그 접화군생이 교감된 것이다.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의 간섭을 받지 않는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했고, 3년간 옥고를 겪은 것도 강직한 실천가였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추사 김정희에서 비롯된 '삼전지묘' 난(蘭) 그림의 맥을 이으며 외유내강을 더했다. 아울러 사람뿐만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천지만물이 다 같이 존귀한 생명으로 모심과 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설파했다.
▼그 자신은 '일속자(一粟子)'를 자처했다. '좁쌀 한 알'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 사회, 종교, 교육 모든 분야가 결집된 생명사상의 핵이다. 그가 생을 다할 때까지 정성을 쏟아 부은 일이 한살림 운동이다. 이것이 '좁쌀만인계'로 전국에 확산됐다. 그리고 지난 4일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이 출범했다. 무위당은 생전에 “밑으로 기어라”라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그 하심(下心), 겸허(謙虛)가 봄기운처럼 다시 피어오르리.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