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봉평 메밀꽃 계절

“영서의 기억이라고 하여도 나에게는 읍내의 기억이 있고 마을의 기억도 있고 산골의 기억도 있으나 가을 기억으로는 산과(山果)와 청밀(淸蜜)과 곡식과 농산물 품평회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조광(朝光)' 1936년 11월호에 '영서의 기억' 제목으로 실린 가산(可山) 이효석의 고향(평창 봉평)에 대한 추억이다. 글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시든 옥수수잎에 영(嶺) 위에 뜬 달이 차게 비칠 것이다. (…) 머루 먹은 마을 사람들의 입술은 점잖지 못하게 자줏빛으로 물들었으렷다.”

▼가산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상징되는 산촌 봉평은 영동과 영서의 중간 기착지다. 진부장, 봉평장, 대화장이 성황을 이뤘던 연유다. 이곳 봉평면에 의미 깊은 명소가 있으니 '봉산서재(蓬山書齋)'다. 이는 율곡 이이와 화서 이항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인근 '판관대'에는 이율곡 잉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인천에 있던 이원수와 강릉 친정집에 머물던 신사임당이 각기 용꿈을 꾸고 봉평 본가에서 만난다. 이때 아이를 잉태하니 훗날 성현이 되는 이율곡이다.

▼봉산서재는 본래 '봉산재'다. 1895년 향리 유학자 홍재홍이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주변 10리를 위토(位土)로 하사받고 유생들의 성금을 더해 건립했다. 창건 당시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 태은 추성구 등이 조직한 강수계(講修契)의 노력이 컸다고 하여 '강수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1906년 중건 때 의병장이었던 의암 유인석이 일제의 감시를 피하고자 '서(書)' 자를 넣어 '봉산서재'가 됐다. 율곡, 화서, 면암, 의암, 태은의 인연에 가산이 나왔으니 가히 문향이다.

▼소설처럼 봉평은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여기서 3일 제12회 효석문화제의 막이 올랐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밭'이 주제다. 올해는 주민들이 마당극 '메밀꽃 필 무렵'을 펼치고 전통 민속경연 대회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마련했다. 순박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메밀음식 또한 별미다. 문향, 고향의 정취가 100만 관광객 발걸음을 가을 추억으로 안내할 테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라이프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