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올림픽 트레킹 로드를 가다]그윽한 솔향기 사이로 수줍게 피어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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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

◇강릉 아리바우길 8코스는 소나무를 비롯한 주변 풍광이 뛰어나 천천히 걸을수록 행복감을 준다. 강릉=김남덕기자

실수로 7코스보다도 먼저 찾아간 8코스

미세먼지·황사 없는 파란 하늘 반겨줘

시작점인 명주군왕릉 주변 가득 할미꽃

소나무 향연 속 산벚꽃 자태 도드라져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솔바우 전망대

강릉시내 비롯 경포·강문해변 한눈에

최근 미세먼지, 황사 때문에 트레킹 일정을 잡는 것도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다행히 산행을 하기로 한 지난 12일 강릉의 하늘은 기대치를 넘어서고도 남을 만큼 맑고 높았다. 기분 탓일까. 올림픽 아리바우길에 오르는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기간을 건너뛰어 4개월 만에 걷는 길이지만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시작은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강원도기념물 제12호로 강릉 김씨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묘소다. 동행한 사진부장이 할아버지 묘에 들러 절 한번 하고 가자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사온 술과 과일로 간단한 차례상을 차려 예를 올리고는 바로 이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 파랑 솟대 오리 주둥이 방향으로 출발=군왕의 묘 주변에는 여기저기 할미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땅으로 향해야 할 꽃봉오리가 오랜만에 열린 맑은 하늘을 보려고 그러는지 고개를 한껏 치켜든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흘렀다. 출발할 시간. 그런데 어느 쪽이 출발 지점인지 찾을 수가 없어 말 그대로 '우왕좌왕'이다. 병풍을 친 듯 소나무로 둘러쳐진 묘소 위를 한참 두리번거렸다. 분명 명주군왕릉이 8코스의 초입이라고는 했는데 그 표시를 찾을 수 없으니 난감하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요. 저 밑으로 한번 내려가 보시죠.” 앞서 지나쳤던 '능향정' 마당으로 다시 내려왔다. 또다시 두리번. 능향정을 등에 지고 오른편으로 등산로 같은 것이 보인다. 그 앞에 다다르자 빨강·파랑 솟대 오리가 보이는데 파란놈 주둥이 방향 쪽이 코스의 시작이다. 함께 서 있는 이정표도 바우길 3·4·10구간, 아리바우길을 가리킨다. 시작은 살짝 오르막길이다. 얼마 안 가서 다시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된다. 바우길 10구간, 올림픽 아리바우길 8코스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 소나무 향연…산벚꽃, 산죽은 포인트=코스에 접어들면 소나무는 실컷 볼 수 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심심치 않게 만나는 산벚꽃의 자태가 산 아래 동네보다 유난히 예쁘고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소나무의 향연은 계속해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던 중 소나무 숲 한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키 작은 산죽(山竹)과 조릿대의 바다는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파도처럼 일렁인다. 저 멀리 경포바다에 발을 담그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발목 아래로 바다의 시원함이 스친다. 한참 기분을 내며 걷고 있는데 저기 멀리서 '슈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웬 자동차 소리?” 혼잣말을 하며 일행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웃음) 무슨 소리긴 차 달리는 소리지.” 이 코스도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야 한단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5코스가 영동고속도로 위를 지나치는 코스였다면 이번 코스는 그 도로를 머리에 이고 지나쳐야 한다. 확 깨는 기분. 산길을 내려와 대관령휴게소가 보이는 좌측으로 꺾어져야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얼마를 더 걷다 4.2m 높이의 지하도를 통과해야만 코스를 이어갈 수 있다.

# 강릉시내를 한눈에 보고 잠시 휴식=지하도를 지나쳐 그리 달갑지 않은 아스팔트 위를 꽤나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나타나는 또 다른 2차선 차도. 여기까지 건너고 승천사 방향으로 향해야 비로소 흙으로 된 폭신폭신한 길에 접어들 수 있다. 경사가 있는 산길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주변 풍경은 한없이 여유롭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상상 속의 시골풍경 그대로다. 잠시 후 조립식 건물 앞으로 석탑 하나가 서 있는 승천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을 타고 한참을 더 올라가면 코스의 하이라이트 솔바우 전망대에 다다르게 된다. 가장 전망 좋은 곳이다. 여기서는 강릉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멀리 경포해변과 강문해변도 볼 수 있다. 파란 하늘에 파란 바다까지 그야말로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떡하니 송전탑이 솟아 올라 시야를 가린다. 옥에 티다. 솔바우 전망대는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이다. 이제는 중력에 순응하며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스마트폰 앱(Tracky)의 고도계를 보니 438m. 풍경들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 심스테파노길로 코스 마무리=바람을 맞아가며 시원하게 휴식까지 취했으니 이제 편안하게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산행은 내려갈 때가 특히 힘들어요. 쉽게 보지 마세요.” 일행 중 누군가 조심하라며 던진 말이다. 새겨들었어야 했다. 솔바우 전망대 이후 만나는 내리막은 엄청나게 가파르고 위험하다. 다리에 워낙 힘을 주고 내려간 통에 하마터면 쥐가 날 뻔했다. 만만하게 보다가 제대로 큰코다쳤다. 이 내리막 구간만큼은 노추산(3코스)을 넘을 때보다 더 험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구러 길을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법륜사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부터는 완만하게 내려가기 때문에 마음을 놓아도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마을길을 타고 조금 더 걷다 보면 엄청난(?) 난관을 만나게 된다. 심스테파노길(바우길 10코스) 이정표가 박살이 나 있는 현장이 그것이다. 당황스러운 순간. 하지만 여기서 직진하면 된다. 곧바로 아름다운 꽃대궐이 펼쳐진다. 길을 타고 나타나는 천주교묘원을 지나 길을 타고 걸으면서 동해고속도로 교각이 보이고, 우추리(위촌리) 간판까지 마주하고 나면 코스는 마무리된다.

주린 배를 안고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데 사진부장이 진지하게 묻는다.

“그런데 우리가 7코스는 갔었나?” 오랜만에 본 맑은 하늘에 홀렸었나 보다.

강릉=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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