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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주자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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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재 율곡연구원장

코로나19로 한참 뜸했던 터에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봤다. 우리 역사에 대한 남다른 독법으로 매번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도 컸다. 스토리는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에 관한 이야기다. 순조가 등극하면서 불어닥친 신유사옥(신유박해)의 광풍으로 흑산도로 귀양을 간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저술하게 되는 과정을 깔끔한 흑백 화면에 담아냈다. '자산어보' 서문의 내용을 토대로 만든 픽션이라고 밝히고 있는 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화면 가득 넘실대는 바다와 거기에 삶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흑백영화 특유의 원시성과 맞물리며 힘 있게 다가왔다.

영화에는 이런 영상미 말고 또 다른 재미가 하나 더 있었다. 삶의 애환을 핍진하게 담은 대사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여운이 남는 대사가 하나 있다. 흑산도에 막 귀양 왔을 때 '창대'라는 이름의 서얼 출신 청년 어부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힐난을 받았을 때 정약전이 한 대사다. 어부로는 드물게 '명심보감'까지 뗀 창대는 정약전이 '서학쟁이(천주교도)' 혐의로 유배 온 것을 알고 그의 면전에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 사람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임에도 배웠다는 선비가 서학에 빠져 이를 저버렸다고 일갈한다. 예상치 못한 봉변에 정약전은 절해고도에 사는 젊은 어부의 의식세계에까지 스며들어 있는 성리학의 힘에 놀라며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주자(朱子)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

그런데 이 대사는 영화에서 한 번 더 나온다. 신유사옥이 일어나기 전, 서학을 믿는 동료들과의 모임에서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조상 제사를 금하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말을 들은 정약전은 효를 근본으로 하는 나라인 조선에서 이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반발하면서, 그렇다면 자신은 차라리 배교를 하겠다며 일어선다. 이를 본 동료 하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정약전의 뒤에 대고 같은 말을 던진다. “주자는 참으로 힘이 세구나!”

그러니까 영화에서 이 대사는 예수를 버릴지언정 주자의 가르침은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던 한 사람의 선비가 잘못된 정치로 백성들의 고통이 가중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성리학도 결국 현실은 눈감은 채 교조적인 신봉만을 요구하는 도그마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장치인 셈이다. 정약전은 이 깨달음을 통해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성리학적 고담준론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실용적 지식을 보급하는 일임을 자각하고 창대의 도움을 받아 물고기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정약전의 시대로부터 두 세기가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에서 주자는 아직도 힘이 세다. 어디 주자뿐인가? 예수도 힘이 세고, 석가도 힘이 세고, 한쪽에서는 마르크스도 여전히 힘이 세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의 이념들은 어떠한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오직 푸른 것은 저 영원한 생명의 나무”라고 했던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듯 센 힘으로 우리를 휘두르는 저 가르침들도 처음에는 삶을 구원하는 '푸른 생명'이었을 것이나 어쩌다 이제는 '회색 이론'이 되고 만 것인지. 신앙도 학문도 이념도 결국은 '사람'이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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