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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불세출의 작사가이자 시인 ‘박건호' 선양사업 나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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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수 전 원주MBC 보도부장

대중가요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특정 작사가에 의해 인기 정상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가 박건호다. 1972년에 노랫말을 지어 발표한 대중가요 ‘모닥불'은 그가 작사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박인희를 일약 정상의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른다. 최진희의 ‘그대는 나의 인생' 조용필의 ‘단발머리'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 이수미의 ‘내 곁에 있어주' 나미의 ‘빙글빙글' 김종찬의 ‘토요일은 밤이 좋아'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용의 ‘잊혀진 계절' 등…. 하나같이 정상급 가수들이 내세우는 대표곡들이다.

7080세대의 영혼의 감성을 흔들던 주옥같은 노래요, 지금도 명곡으로 남아 있는 박건호의 불세출의 곡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작사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박건호는 필자의 고교 한 해 직속 선배였다. 문학동아리의 일원으로 그와 학창 시절을 보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그는 약관의 나이에 첫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펴내며 등단했고, 필자는 언론사에서 아나운서의 직분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간접적인 소식만 들으며 살았다.

1999년 가을로 기억된다. “아우님, 나 건호인데 내가 원주에서 콘서트를 하려고, 자네가 아나운서 출신이니 사회 한 번 봐 주게나.” 역시 어눌한 말투다. 가수 섭외는 자신이 모두 끝냈으니 무대에서의 진행과 연출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1부의 무대가 마무리되고 2부의 막이 오른다. 데뷔작인 ‘모닥불' 배경음악이 흐른다. 필자가 넌지시 박건호를 무대 위로 불러내기에 이른다.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살아지는 모닥불 같은 것….” 음유시인 박건호의 무대다. 만석을 이룬 객석도 열광이다. 그러던 그가 10여 권의 시집과 다수의 에세이집, 그리고 3,000여 곡의 노랫말을 남기고 2007년 12월9일 생을 마감하기에 이른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2022년 2월25일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임식과 취임식이 있다. 신임 집행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동안 순연됐던 박건호가요제도 손 볼 일이다. 박건호 선양사업이 어찌 문학인들만의 조촐한 잔치로 흘러서야 될 일이던가. 박건호 시낭송회도 그렇고 박건호가요제도 이제 전국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박건호테마공원도 조성해 보자. 정치권도 나서고 언론사도 힘을 보탤 일이다. 난영가요제와 배호가요제를 능가하는 축제로 발전시키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단구동에 있는 소설가 박경리의 생가는 택지 조성사업으로 당시에는 철거 대상이었다. 그러나 원주의 문인들과 시민들의 절대적인 요구로 설계변경을 거쳐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급변하는 도심의 번창으로 문학관으로서의 역할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의 박경리문학관이 흥업면 매지리에 들어서기에 이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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