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특집]동강할미꽃 지키고 정선아리랑 이으며 전교생 6명 미래가 쑥쑥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어린이날 100주년 특별기획] 분교 아이들이 꾸는 꿈 (1) 정선 가수분교

◇정선 가수분교 학생들이 창의력 수업을 하고 있다. 전교생은 2학년 유새봄, 3학년 유나영(가명), 5·6학년 이상호·상빈 형제, 유춘자·최종녀 할머니 6명이다. ◇학생들이 정선 가수분교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직접 만든 미니카 레이싱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

1교시 수업은 나의 장래희망 그리기. 정선 가수분교 막내 새봄(8)이가 연필과 지우개를 번갈아 쥐어 가며 1시간을 끙끙거린다. 꼼꼼히 색칠까지 끝내고 완성한 그림은 예쁜 구두를 안고 있는 자신이다. 커서 구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설명에 왜냐고 물으니 “예쁜 구두를 실컷 신고 싶어서요”라는 해맑은 답이 돌아왔다.

이어진 쉬는 시간. 새봄이의 유일한 단짝 나영(가명·9)이에게도 꿈을 물었다.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간호사요”라고 대답하더니 곧 “음…. 근데 운동선수도 되고 싶어요. 축구가 재밌어요”라고 한마디를 보탠다. 간호사는 고모가 일하는 모습이 멋져서, 운동선수는 TV에서 본 손흥민 선수를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나영이는 손흥민 선수 이야기를 시작으로 며칠 전 고학년 오빠들, 선생님과 함께 축구를 하던 기억까지 쉴 새 없이 꺼내 놓았다. “원래는 늘 7명이 축구를 했는데요. 언니, 오빠 2명이 얼마 전 전학을 갔거든요. 이제는 5명이 해야 해요. 아쉽긴 한데 그래도 축구가 재밌으니까 괜찮아요.”

이야기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나영이는 점심시간 축구공을 들고 와 차며 다시 묻는다. “저 진짜 잘하죠?”

4월의 끝자락에 찾은 가수분교는 정선읍 시가지에서 동강 할미꽃서식지를 따라 40리 굽이길을 가야 닿는 작은 시골 학교다. 물이 아름답다는 뜻의 ‘가수(佳水) 마을' 지명처럼 학교 안뜰에서 유유히 흐르는 동강을 내려다볼 수 있고, 운동장 옆 수령 570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시원한 그늘 쉼터를 내어준다.

나영이의 말처럼 가수분교 전교생은 지난달 6명으로 줄었다. 5·6학년 남매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정선읍내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다. 이제는 막내 2학년 유새봄, 3학년 유나영(가명), 5·6학년 이상호·상빈 형제만 남았다. 아이는 이렇게 4명뿐으로 2명은 늦깎이 할머니 학생이다. 손자 상빈·상호와 함께 등교하는 유춘자(82) 할머니, 마을 토박이 최종녀(80) 할머니가 올해 나란히 3학년이 됐다.

오후 수업이 시작되고 장난감 자동차 만들기가 과제로 주어졌다. 공작 활동을 좋아하는 상빈이와 상호 형제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형제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부품들로 바퀴를 연결하고 전기 모터를 작동시키는 일을 척척 해냈다. 형 상빈이는 지난해 열린 제42회 강원도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전국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할 만큼 만들기에 소질이 있다. 올해는 과학의 날을 맞아 교육부장관상도 받았다.

그런 상빈이에게도 꿈을 물었다. 과학자, 기술자와 같은 대답을 예상했지만 상빈이는 한참을 망설이며 침묵했다. 오히려 중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읍내로 가거나 아니면 다른 먼 학교를 가지 않을까요?”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졸업을 앞둔 6학년 상빈이에게는 꿈과 진로보다는 당장 눈 앞에 다가온 진학이 더 큰 고민인 듯했다.

수업을 마친 최종녀 할머니가 하굣길에 올랐다. 지난해 정선읍내로 이사를 간 최 할머니는 시내버스 배차가 맞지 않아 통학에만 하루 3시간을 할애한다. 이만하면 읍내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갈 만도 한데 최 할머니는 “나 하나 빠져서 학교가 문을 닫으면 어째”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상빈이, 상호 형제가 졸업하면 학교가 문을 닫지 않을까 싶어”라며 걱정을 보였다.

가수분교는 올해 강원도교육청의 통·폐합 권장 대상에 포함됐다. 학부모 설문조사가 한창으로 3분의2가 동의하면 학교가 문을 닫는다. 인접한 마을들은 아이 웃음소리가 잦아들었고 통학이 가능한 거리에는 대규모 주거지역이 없어 도시 유학생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부임 3년차를 맞은 함승준 가수분교장은 “마을 주민분들에게 입학할 만한 아이를 수소문했는데 앞으로 3년간은 없을 듯싶다”며 “할머니 몇 분이 입학을 고민하고 계시다 들었지만 학교를 활성화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날 자율 활동은 정선아리랑 부르기가 진행됐다. 가수분교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정선아리랑센터 아리랑 전수강사로부터 한 달에 2번씩 아리랑 가창 교육을 받고 있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략)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새봄이와 나영이가 교탁 앞에 서서 아리랑 곡조를 제법 구성지게 뽑아냈다.

가수분교 아이들은 정선아리랑 외에도 마을 교육의 일환으로 동강할미꽃 온마을학교를 통해 월 2회 다양한 교외 활동을 체험한다. 동강할미꽃을 직접 심거나 짚풀 공예, 예절교육, 아리랑고갯길 탐사 등이다. 도시학교에 비해 학생은 적지만 배움에 부족함이 없길 바라는 학교와 마을의 노력이다.

서덕웅 온마을 선생님은 “아이들의 정서를 채워주려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있고 아이들이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수분교의 본교 정선초교 노진홍 교장은 “학생 감소는 지금껏 그래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겠지만 가수분교를 둘러싼 생태 환경이 교육적 가치가 큰 만큼 이를 살려 학생들과 학부모가 가고 싶은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선=정윤호기자 jyh89@kwnews.co.kr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