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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타지로 빠져나가는 `강원의 기록유산' 보고만 있을건가

박원재 율곡연구원장

수집·보존은 고사

기초조사마저 허술

전문기관도 부재

1569년 4월14일(음력), 연로한 외할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외가인 오죽헌에 내려와 있던 율곡은 강릉의 연곡현(현 연곡면) 서쪽에 수려한 산과 계곡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인들과 산행을 떠났다. 이 여정에서 수려한 풍광에 감탄한 율곡은 신라의 마의태자 군사들이 식사하던 장소라 하여 식당암이라 불렸던 너럭바위를 비선암(秘仙巖)이라 새로 명명하고 산 전체를 청학산(靑鶴山)이라 이름 붙이는 등 절세의 경승지를 접한 감흥을 글로 담았다. 당시 율곡에게 감탄을 안긴 산은 바로 오늘도 오대산 노인봉에서 동해로 장엄하게 산세를 드리우고 있는 '작은 금강산', 소금강이다.

소금강을 산행하다 식당암에서 잠시 땀을 식히노라면 율곡이 이 너럭바위를 비선대라고 불렀다는 안내문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450년 전, 이 바위 어디쯤에서 똑같이 땀을 식혔을 율곡을 떠올리게 된다. '길'이 '역사'가 되고, '자연'이 '인문'이 되는 순간이다. 앞서간 이들의 삶의 자취는 이렇듯 언제나 뒤에 오는 이들의 삶의 뿌리가 된다. 뒤에 오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앞서간 이들과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억'에 의해 재구성된다. 그러면 기억은 무엇에 기반을 둘까? 두말할 것도 없이 '기록'이다. 역사에서 기록이 갖는 중요성은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기준이 '문자기록'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율곡의 소금강 산행도 그가 당시의 여정을 청학산기(靑鶴山記)라는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과 별도로 세계기록유산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록유산에 대한 우리 지역의 관심은 부끄러울 정도다. 종합적인 수집·보존은 그만두고라도 기초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록자료의 대표격인 고문서와 고서의 경우, 2000년대에 들어 지역 연구자들에 의해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강원대 고문서연구센터가 2010년을 전후해 3년간 좀 더 체계적인 작업을 진행했지만, 그마저도 5만여 건으로 추정되는 소장량 가운데 50% 정도만 조사하는 데 그쳤다는 말을 들었다. 과문인지 몰라도 이후로 주목할 만한 작업이 또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결국 강원권 기록유산에 대한 지역 주도의 조사는 지난 10년 동안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지역에 이들 자료를 기탁받아 보존해 주는 전문기관이 부재한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대학 연구소의 경우 프로젝트가 중심이고 박물관 또한 문화재 자료가 우선인 까닭에 대부분 민간에 소장돼 있는 기록유산들은 쉽게 외면받는다. 이렇다 보니 지역의 '기억'을 담고 있는 기록유산들은 속절없이 외지로 흘러나간다. 가까운 예로, 대대로 2,000여 점이 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던 춘천의 모 안동권씨 문중은 보관에 어려움을 느껴 지역의 유관기관에 기탁을 타진했으나 여의치 않자 2018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일괄 기탁했다. 동해시에 있는 모 강릉김씨 문중에도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 관련 기록이 12차례나 등장하는 200여 년간의 일기자료가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지역의 마땅한 기탁처를 찾지 못해 2018년 동북아역사재단에 기증되고 말았다.

근래 많이 이야기되는 지역분권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지역민이 자신들의 삶에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삶의 자긍심의 중요한 원천은 자기 존재의 뿌리에 대한 의식이다. 그렇다면, 강원 역사문화의 뿌리들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다른 지자체에서 지역의 기록유산을 전문으로 보존 연구하는 기관을 앞다퉈 육성하는 이유를 곰곰이 곱씹어야 할 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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