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민선 6기-새로운 100년 도약]최연소 MBC 사장·국회의원 거쳐…친화력·스킨십 빼어난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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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당선자, 그는 누구인가

①어린 시절 최문순 지사의 모습 ②기자 시절 최문순 지사 ③2008년 12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된 모습 ④재임 기간 도내 특산물을 홍보하는 최문순 지사의 모습

춘천고 재학 시절 10월 유신 겪어 … 강원대 진학하며 자연스레 민주화 운동

기자 시절 노조위원장 지내며 해직 아픔도 … 부장대우서 대표이사 파격 인사

2011년 보궐선거 극적 승리 이어 바닥민심 잡으며 정당 지지율 열세 극복

■춘천 금병산 자락에서 태어나

최문순 당선자는 1956년 춘천시 신동면 정족2리에서 태어났다. 강원대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났다가 2011년 도지사 보궐선거를 계기로 30여년 만에 귀향했다.

춘천초교와 춘천중, 춘천고, 강원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춘천고 재학 시절 10월 유신이 선포되는 것을 보며 강원대에 입학한 뒤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어학을 전공했지만 본인을 영어교육의 대표적인 피해자라고 소개한다. 논문도 영어로 썼지만 미국인을 만나면 말을 못해 도망가기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군대는 화천 북방 7사단 8연대에서 기관총사수로 복무했다. 최 당선자는 군대생활 당시에 대해 7사단은 북한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단 중의 하나로 늘 긴장이 높은 지역이었고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큰 전투도 두 세 차례 있었다고 회고했다.

■노조위원장 출신 MBC 사장에 오르다= 1984년 MBC에 입사한 그는 1997년까지 보도국 사회부 기동취재반 기자로 활동하는 등 사회부를 이끌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해 방송사들이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한 덕분에 입사했다고 자신을 낮췄지만 언론사 생활은 괴로운 나날이었다. 현장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해서 회사로 보내면 방송에는 엉뚱한 내용이 나오곤 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1995~1996년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1996년 해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1년 만에 복직됐다. 그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국언론노조 초대위원장, 보도국 기획취재부 차장, 사회부차장, 인터넷뉴스부 부장대우, 보도국 인터넷뉴스센터 취재에디터를 거쳐 2005년 48세에 최연소로 MBC 대표이사가 됐다. 당시 직급은 부장대우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는 사장직을 수행하며 첫째,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둘째, 방송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사장 재임 시절에 대해 “무한도전, 대장금, 주몽, 태왕사신기, 황금어장, 이산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MBC의 르네상스를 이뤘다”고 자평했다.

■정치 입문부터 재선 도지사 당선까지= 최 당선자는 2008년 2월 MBC 사장직에서 퇴임 후 같은 해 5월 제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줄곧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에서 활동했다. 국회의원 임기를 1년 이상 남겨둔 2011년 2월25일 의원직을 사퇴하고 “강원도의 자존심을 지키고 이광재 지사를 되찾아오겠다”며 4·27 도지사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와의 양강 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초반 인지도에서 밀려 다소 고전했으나 강원도에 대한 열정과 끈기를 앞세워 막판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도지사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어 3년간 도정을 이끌며 특유의 친화력과 스킨십으로 바닥민심을 잡으며 정당지지율의 열세를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트위터를 활용해 도루묵 판매에 나서며 '도루묵 지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위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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