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금요칼럼]고교평준화 정책의 반성

 고등학교의 평준화 정책은 그 실시 직후부터 지금까지 40년에 가까운 동안 심심치 않게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때로는 '평준화 망국'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전면적 부정의 어조를 띤 것도 있었고, 때로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온건한 태도를 지닌 것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 동안의 평준화 정책으로 인하여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 온 것도 사실이다.

 애초의 고교 평준화 정책은 합리적으로 여론을 확인하고 여건을 조성하여 시행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이 소유했던 절대적인 힘의 행사를 통하여 강행한 것이었다. 그 결과 사실상으로 중등사학의 말살을 초래하였고, 물리적 여건과 교육적 환경에 있어서 학교 간에 명백한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서 학교의 선택권을 박탈하였다. 또한 이질적인 집단에 위한 적절한 프로그램의 개발도 없이 모든 고교생들에게 획일적인 교육을 과하였으며, 국가의 경쟁력을 주도할 인재의 체계적인 생산력을 거세해 버렸다. 물론 약간의 보완은 있었으나 근본적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평준화 정책이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는 우선 입안 당시에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 초등교육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었던가를 회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고등학교에의 입시준비를 위한 과중한 학습부담은 중학생들의 신체적 성장과 정신적 발달을 위축시켰고, 입시위주의 교과목 편성으로 인하여 파행적인 교육과정의 운영과 암기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였으며, 지나친 경쟁의식은 이기적인 교육풍토를 조성하였고, 지역간-학교간 교육수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과중한 과외 교습비의 지출로 가정과 국가의 경제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일류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집착은 치맛바람과 입시파동 등의 사회문제를 야기했으며, 과외교습의 성행으로 학교교육의 공신력이 실추되었고, 출신학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풍조가 만연하였다.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는 학교교육을 통하여 “대물림”되는 현상을 낳았다.

 당시의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가 대학입시에 시달리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풍토와 거의 일치한다.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그러한 교육적-사회적 문제가 지금의 고교생들보다는 훨씬 어린 중학생들에게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 평준화 이전에는 초등학교의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그러한 가혹한 경험을 하게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기억한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 다시 평준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다.

 어쩌면 현재 고교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제도에서 혜택을 누린 집단에 속하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4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면서 이미 그러한 심각한 사태를 모두 망각하였거나, 아니면 오늘의 우리가 바라는 바인 인재개발의 효율성에 너무 집착해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권위주의적 정권의 우악스런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평준화 상태의 교육이 지닌 문제들만을 보고 그 폐지를 서둘러 주장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정의의 측면에서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도 불구하고 평준화에 의해서 성취한 성과들만을 보고 원형 그대로 존치시킬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할 것도 아니다. 교육제도의 운영은 한 가지 혹은 몇 가지의 효율성만을 두고 평가할 수는 없다. 효율성이란 학교교육이 지닌 다변적인 목적의 체제에 비추어 필요악이 최소화된 상태라고 판단될 수 있을 때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는 보완되어야 한다. 첫째, 고교 평준화 정책이 유지되려면 학교의 선택권과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통하여 경직된 획일성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평등교육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교육을 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각자에게 유의미한 학습의 경험'을 하게 할 때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둘째, 사립학교는 자체의 건학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하여 점차적으로 자율화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중등사학은 건학이념의 구현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공적 책무성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셋째, 국가의 발전이나 경쟁력의 장기적인 대비책에서 요구되는 인력의 양성과 충원의 계획에 따라서 특수목적고, 특성화고, 자율학교 등의 대안적 제도를 계획성 있게 병존시키고 그 목적에 맞게 관리해야 한다.

 -이돈희 〈민족사관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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