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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반

[법정에서 만난 세상]이름 다시 바꿔 주세요

우관제 춘천지법 영월지원장

우관제 춘천지법 영월지원장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경구이다. 그런데 필자가 담당하는 개명(改名)사건의 신청인 중 한 사람이 위 경구를 들어, 즉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겨야 하니 좋은 이름으로 고쳐야 한다며 개명신청을 한 적이 있다. 잠시나마 위 경구의 참 뜻을 오해하여 그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요즘 들어 법원에 개명 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개명이 폭넓게 허용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2005년 대법원 결정이 있은 이래로 허가율이 증가하면서 개명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5만건이 채 안 되었던 것이 최근에는 약 16만건에 달하고 있다. 신청 이유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이름이 촌스러워서, 놀림의 대상이 되어서'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더 나은 삶이나 미래를 위해 이름을 바꾸려는 사람이 많아졌고, 특히 작명소에서 이름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는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대법원 결정으로 허가율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명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 즉 가족관계등록부 상의 이름은 이명이나 예명 등과 달리 국가에 의하여 정통화된 공정의 이름으로서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개인의 공법적, 사법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공부상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개명신청권의 남용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 이를 허가하지 아니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담당한 사건 중에 부르기도 좋고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이름을 개명해 달라는 신청이 있었다. 다른 사유도 있었으나 역시나 작명소에서 이름이 좋지 않아 일이 풀리지 않으니 개명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명을 허가한 지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다시 또 이름을 바꿔 달라고 한다. 개명 후에도 일이 풀리지 않아 다른 작명소에 갔더니 개명한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유만으로는 재개명을 허가해야 할 만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불허하였다. 단순히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즉흥적으로 개명을 하는 것은 지양했으면 한다. 한 번 개명을 하면 이를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돌리거나 또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일단 종전의 이름이 나쁘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이상 다시 재개명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그 요건이 엄격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개명 사건을 담당하면서 느끼는 것이 모든 것을 이름 탓으로만 돌려 너무 쉽게 개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더라도 인간 운명의 결정에는 이름뿐 아니라 마음가짐, 생활태도 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그동안 내 삶에 최선을 다해 왔는가를 먼저 곱씹어 보고, 그런 다음 마음가짐과 생활태도 등을 새롭게 해야만 바꾼 이름의 참 의미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아가 자기 개인만의 삶을 넘어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의 가슴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형식적인 이름 석 자가 아닌 앞서 경구에서 말하는 진정한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사람 모두 다 모든 일이 술술 풀렸으면 하고, 또한 나중에는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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