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편안한 심(心)터

최돈설 강릉문화원장

언제부터인가 힐링이 웰빙을 제치고 검색 순위 정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힐링이라는 단어 검색이 연간 6만건을 넘어섰고, 마음 치유와 관련한 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아프고 괴롭고 힘들다는 방증이 아닐까. 신체적 질환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대부분일 것 같다. 선인들도 '칼에 맞은 상처는 치유돼도, 말(言)에 베인 상처는 세월이 갈수록 깊어진다'고 했다. 진짜 치유는 상처와 정면으로 대면하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의 상처를 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며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환부를 과감히 도려낼 때 옹골찬 힐링이 시작될 수 있다.

마음의 상처 치유는 자연과 동행하는 것이 좋다. 솔바람 소리(松鄕), 파도 소리(海鄕), 인정 소리(情鄕)만 들어도 우리 마음은 치유되기 십상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게 할 때, 그래서 본연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혼자 조용히 찾아가 숨을 고르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런 곳은 강릉이 제격이다. 안온한 휴식처가 바로 강릉이다. 음식에 반하고, 풍경에 취하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기억은 과거로 달린다. 그 날에도 솔향(松鄕)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다. 밤늦게 대관령 숙소에 도착했는데, 비 온 뒤끝이라 물소리가 마음을 보듬었고, 숲 속의 밤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와 어울려 교향곡을 연출했다. 교교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열닷새 달빛이 그리 밝을 수 없었다. 하늘을 향해 홍송(紅松)이 저리 기운차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밤 아무도 몰래 달빛을 은밀히 머금고 자란 때문일 것이다. 가던 구름이 소나무 끝에 걸려 주춤거리고, 거기 보름달이 사뿐히 타고 앉아 바람을 쐬고 있다. 밤인 줄도 잊은 듯 산새가 포르르 날며 날개에 내린 달빛을 털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바탕 휘돌아가는 솔바람은 또 어찌 그리 시원하던지.

바다(海鄕) 풍광 역시 감동이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금강산처럼 뾰족뾰족 솟은 기암들이 너무 웅장해 보는 사람은 모두 탄성을 지른다. 장쾌한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며 새하얀 포말을 그리는 풍경, 누천년 풍화작용으로 호박돌들이 드러누운 곳에 파도가 뾰로로∼ 빠져나가는 소리는 누가 들어도 장관이다.

또, 인정 소리(情鄕) 가득한 전통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강릉이 좋은 이유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다. 억양은 투박하나 인간미(情)는 살아 있는 곳이다. 전통시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음식문화가 워낙 좋아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동안(童顔) 같은 분들이 자주 찾는다. 손님들이 다 멀리서 오신다고 한 분 한 분 정성을 다해 대접해 주시는데 어떻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곧 추석(秋夕)이다. 위로는 하늘에 달이 둥글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마음이 원만하다는 한가위다. 추석은 어느 천재의 작품이 아니고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를 통해 만들고, 함께 승낙한 우리만의 이야기다. 그래서 추석은 탕약 같고, 숭늉 같고, 당나무 그늘 같다. 해마다 추석이 되면 십수 년 보살펴주신 사람들의 수고와 애씀을 성찰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수고에 값할 만한 무엇을 키워 왔는가, 또 어디에 자신을 세워야 할 것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추석은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가을과 겨울 사이 낀 작은 계절인지도 모른다. 추석연휴가 아주 길다. 편안한 마음심(心)터, 강릉에서 힐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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