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발언대]지금 한국은 혈액 보릿고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교수

중장년 남성 중에는 헌혈 하면 초코과자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학창 시절이나 군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면서 심심치 않게 만나던 헌혈버스와 헌혈 후 음료수와 간식의 달콤함도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듯싶다.

피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고 유효기간이 짧아 누군가의 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순전히 '대가 없이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실천'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헌혈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자발적 참여는 그 어떤 기부보다 고귀하고 연령이나 성별, 학력이나 빈부와 무관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 혈액에도 보릿고개가 있다. 대학과 각급 학교가 방학중이고 더위가 계속되는 요즘이 바로 그때다. 군인들도 헌혈 참여가 어려운 시기여서 의료진을 비롯해 혈액관리를 담당하는 현장의 긴박함이 일 년 중 가장 힘든 시기다. 혈액 공급을 관심, 주의, 경계, 심각으로 나누는데 무더위에 여름휴가까지 집중되는 요즘은 관심 단계다.

O형 4.3일, A형 3.9일 등 적정 헌혈량이 5일에 못 미치니 헌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단계다(8월6일 현재). 아울러 국내 헌혈자의 한 해 300만명이 적절한데 이 중 70% 가까이가 10대와 20대의 헌혈에 의존하고 있다. 전 연령대가 고르게 헌혈에 참여하는 이웃나라 일본이나 OECD 가입국과 비교해 보면 유독 젊은이들의 헌혈에 장년층이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환자들을 위한 피는 여전히 부족하며, 특히 의약품의 원재료가 되는 혈장 성분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헌혈 외에도 남을 돕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생명을 나누는 헌혈만큼 값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헌혈이 주는 생명 나눔과 나눔 후의 기쁨.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절박한 이웃에게 삶이라는 희망을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기부가 아닐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과연 이 말에 동의하는 기성세대라면 가장 최근에 헌혈한 게 언제인지 한 번 따져볼 일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나눌 때 더 진하다. 언제까지 '1020'세대의 헌혈에 의존할 것인가? 인구구조의 변동과 급격한 개인주의화로 지속적인 헌혈이 어려운 현실이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69세까지 1년에 6번 헌혈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일,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보람차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