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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내 아를 낳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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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주 도여성특별보좌관

코미디언 김시덕이 '내 아를 낳아도…'를 했을 때 뭔가 찜찜했고 불길했다. 언어생활에서 극단의 함축미를 추구하는 경상도 남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저렇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덤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모 지역 다문화 행사장에서 내빈 축사를 들었다. 간단했지만 그 느낌은 더 불길했다. 시장님이 한 말씀 하셨다. '여러분에게 드리는 부탁은 간단합니다. 아이를 셋만 낳아주십시오.' 다음은 시의회 의장 순서였다. '제 부탁도 간단합니다만, 하나만 더 쓰십시오. 넷만 낳아주십시오.' 이건 웃자는 말도 아니었다. 정치인의 말을 통해 국가의 관점(이주여성들을 '국민의 배우자, 국민의 며느리'로 간주하는)을 황당하게 확인하는 기회였다.

최근의 저출산 정책 역시 '아를 낳아 달라'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쏟아붓는 돈에 비해 실효성도 없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정책들이 걸리고 채인다. 행정자치부의 출산율 지도 제작, 법무부의 낙태죄 폐지 의견서, 보건복지부의 낙태시술 의료인에 대한 처벌 공표. 이런 시대착오적인 해프닝은 계속될 것이다. 절박감만은 이해한다. 오죽하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아이 낳으면 1억을 주자'는 주장을 했겠는가.

2016년 합계 출산율은 1.17명이지만, 유배우자의 합계 출산율은 2.23명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낳을 만큼 낳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혼인외 출산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혼인율과 출산율이 긴밀하게 연동되기 마련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3포 세대'를 결혼까지 유인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출산이란 경제적 여건, 주택 및 전세가격, 양질의 일자리, 일·가족 양립 등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니 말이다.

이 시점에서 저출산 대책이 출산아를 늘리는 것에 있는지, 인구 증가에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괄적으로 인구 증가를 목표로 한다면 정책 방향은 달라져야 한다.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정책에 배어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털어내야 한다. '어떤 아이(법률혼에 근거한 유배우 여성의 출산아)'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환대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여전히 전 세계 입양 아동의 40%가 한국 아동(오마이 뉴스, 2017. 10. 23)이라고 한다. 둘째, 이주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들은 나의 삶터를 위협하는 존재도 아니고,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도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은 전후 재건과 산업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동자 유입정책을 시행했다. '정해진 기간, 주어진 일만 하고 떠날 것.' 국가의 기획과 달리 이주자들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돼 가족을 만들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스위스의 작가 막스 프리쉬는 이 현상을 '우리는 노동자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왔다'고 표현했다. '사람이 왔다'는 말을 여러 맥락에서 곱씹어 봐야 한다. 민족과 인종을 넘어 동등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살아갈 것.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 와서 살만한 환경을 만들고,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인구 늘이기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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