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혁순칼럼] “정치 외면하면 저질스러운 인간에 지배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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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4·15 총선에 무관심하면 피해는 유권자에 돌아와

국가·지역발전 비전 없는 '정치 철새들' 솎아내고

돈 벌어 본 적 없는 사람에 나라살림 맡길 수 없어

전후 사회의 풍속도를 그린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선영 여사다. 그녀의 남편은 대학교수다. 오선영을 중심으로 당시에 만연한 댄스바람의 실체를 묘사했다. 상류층에서는 부산 피란 시절에도 댄스파티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자유부인'에는 오선영 같은 부류만이 있는 게 아니다. 국회의원 오병헌이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오선영의 오빠다. '자유부인'은 오병헌의 행각을 통해 당시 일부 정치인의 부패상을 신랄하게 파헤쳤다. 소설에서는 오병헌을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만한 세도가”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친구 자식의 대학 부정입학을 주선하는 등 각종 이권청탁에 개입한다. 그의 집은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달라졌다. 안방에는 자개장이 놓였다. 작가는 오병헌을 “국민의 대변자라기보다도, 이권을 독점하는 사람”이라며 개탄한다. 그는 총선이 다가오자 재선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고향사람들을 서울구경 시켜주며 환심을 사려 하고, 고향에 중학교를 건립해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 교량 건설 등 선거공약들도 표를 많이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재선에 실패하고 만다. '자유부인'이 나온 지 60년을 훌쩍 넘겼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하지만 우리의 국회의원들과 정치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각종 이권청탁에 개입해 물의를 일으키는 국회의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러면서도 온갖 특혜를 누린다.

정치인은 '입' 말고 '발'을 봐야

4·15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국회의원을 꿈꾸는 후보들은 표 계산에 분주하다. 국가 발전을 위한 진정한 비전과 정책은 뒷전이다.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이 마비될수록 이들은 더 활개친다. 200여년 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이런 유세를 했다. “지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저는 의회로 들어가면 우리 지역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 서슴없이 여러분을 버리겠습니다.” 그러고도 버크는 당선됐다. 뚜렷한 철학의 정치인과 그런 인물을 골라낼 줄 아는 유권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영국 정치는 꽃피우지 못했다. 과연 버크가 지금 한국에 온다면 어떻게 됐을까. 친절하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외치는 후보들에게 밀려 명함도 못 내밀었을 것이다. 옛말에 '정치인은 입을 보지 말고 발을 보라'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 모두 입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번 4·15 총선에선 제대로 된 후보자를 골라내야 한다. 우리와 동거하고 있는 '오병현'과는 이별해야 한다.

함양 미달 후보자 가려낼 때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안개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의 미래는 더욱 암담해진다. 좋은 후보자, 제대로 된 후보자는 누구일까. 후보자를 가리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선별해 내야 한다. 파렴치범 전과자를 이제부터는 절대 뽑지 말아야 한다. 뇌물을 받아 실형을 산 사람, 음주운전이나 음주측정 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다. 선진국치고 우리나라처럼 전과자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예는 없다. 거짓말쟁이나 변덕쟁이도 부적격자다. 정치철학도 없이 이 당 저 당 옮겨 다니는 철새정치인, 과장된 허위공약으로 유권자를 속이려는 후보자도 솎아내야 한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본 적 없는 후보도 문제다. 힘들게 일해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나라의 큰살림을 맡길 수 없다. 과도한 지역 챙기기에 매몰된 후보도 국정을 돌봐야 하는 국회의원에는 걸맞지 않다. 즉, 국가 발전에 대한 비전은 전혀 없고 지역발전 공약과 즉흥적 선거용 정책만 잔뜩 들어 있는 후보는 국회의원으로서 함양 미달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총선에 대한 관심이다. 선거에 관심 없이 변화와 희망을 얘기할 수는 없다. 정치는 우리가 아무리 싫어해도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정곡을 찔렀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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