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총선
총선
총선

기고

[강원포럼]n번방에 놀란 당신에게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유은주 강원도 여성특보

n번방과 박사에 대해 당신은 놀랐을지 모르지만, 이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잔혹한 성 착취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장의사가 산업이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어디선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n번방의 경우 미성년자 성 착취물이라는 점에서 소라넷과 다크앱 등의 기존 불법 음란물 제작·유포와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피해자 74명 중 16명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를 입은 미성년자의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추정된다.

n번방 사례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건이 공론화된 전 과정이다. 시민 제보로 추악한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처벌은 관대했다. 켈리 1년, 와치맨 3년6개월… 와중에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도 공권력이 아닌 시민들이다. 500만명 이상의 청원자가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를 이 사회가 외면하거나 침묵할 수 없는 '사회적 사건'이 되도록 만들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포토라인에 선 모습이 지나치게 평범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박사방 운영자는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허세를 떨었지만, 이들은 악마도,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이들을 악마화하거나 환자로 간주할 때 자본과 결탁된, 이 지독하게 통속적인 범죄의 속성을 놓칠 수 있다. 이들을 키워낸 것은 천박한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이며, 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다 보니 우리 사회는 어린 사람을 성고문하는 영상이 돈이 되는 사회가 됐다.

이런 환경에서 반인권적 범죄를 근절하려면 어떤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까?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행위의 법적 기준을 확립해야 하며, 그에 따른 처벌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김학의도, 장자연 사건의 행위자도, 버닝썬의 승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처벌이 엄정하지 않을 때 범죄자는 자신의 범법 행위를 사회생활에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쯤으로 생각한다.

n번방이 이슈화되면서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국과 비교할 때 관련 법의 양형 기준이 크게 낮지는 않지만, 실제 처벌 수위가 매우 낮다는 점이 문제다. 여성가족부 자료(2018년)에 따르면 아동 음란물을 제작한 성범죄자의 최종 징역 평균 형량은 3년2개월에 불과하며, 피고인 중 실형을 받고 감옥에 간 경우는 전체의 20.8%로 나타났다. 형량 자체도 미미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처벌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정법원의 최근 판결은 그 실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초등학생을 강제 추행하고 강간, 공갈 협박한 고교생에 대해 '비행 정도가 낮고 교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보호처분이 내려졌다. 이런 판국이니 '여자에게 국가는 없다'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방언처럼 터진다. 청와대 청원과 n번방 해시태그 달기, 텔레그램 탈퇴 운동, 관련자 전원 검거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지역 여성들의 성명서와 잇단 릴레이 시위, 정의를 요구하는 고귀한 분노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확산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자기 경험을 증언할 용기를 낸 것도 공감과 연대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쓸어버릴 전환의 시점을 만들어낸 시민의 집단적 힘을 기억하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함께 분노하고 행동하자. 우리의 연대는 강하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