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중언]토익·토플

 50년 동안이나 영어로 일기를 쓴 윤치호(1865~1945)는 16살 때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는 웬만한 미국인보다 고급스러운 영어를 구사했다. 타고난 언어천재인데다 “조선이 이런 야만의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인물이었으므로 영어학습에 남다른 집념이 있었을 터였다. 중국의 소설가 왕멍(王蒙)은 46살에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시카고 공항에서 영어를 한마디도 몰라 창피를 당한 이후 영어 익히기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훗날 중국 정부의 문화부장관을 지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한 왕멍의 영어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영어는 글로벌 언어(global language)로 통한다.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에서 글로벌한 의사소통은 필수요건이고, 그 표준이 영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영어는 과학 언어이자 기술 언어요, 비즈니스 언어이자 인터넷 언어이다. 영어의 지배력은 대영제국과 전후 미국 지배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200여 년 동안 과학논문의 상당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쓰였다. 1920년대만 해도 양자역학 연구에는 독일어가 필수적이었다. 언어의 지배력은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의 지도력과 직결되고, 기술혁신과 정보혁명이 영어로 주도되는 한 영어의 지배력은 쇠퇴하지 않는다. ▼지난 4월 토플 대란으로 이를 주관하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무성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한 해 180개국 학생 직장인 2,400만 명이 영어실력을 평가받겠다고 목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어는 토플·토익이라는 '교육권력'의 형태로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다. 교육의 기능이 영어로 빨려 들어가는 '빨대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토익이나 토플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 주도의 영어능력평가시험이 2009년 하반기부터 치러진다고 한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인정해 주어야 토익이나 토플로 쏠리는 빨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권혁순논설위원·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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