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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김동명의 귀향

“…//님이여! 오오 마왕(魔王) 같은 님이여!//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당신의 밀실로 들어가는)/ 그리고 또 북극의 오로라 빛으로/ 내 몸을 쓰다듬어 줄 것이면// 나는 님의 우렁찬 웃음소리에 기운 내어/ 눈 높이 쌓인 곳에 내 무덤을 파겠나이다.” '개벽' 1923년 10월호에 실린 초허(超虛) 김동명의 등단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보들레르에게'다. 첫 발표작에서 '무덤을 파겠다'고 했으니 시인으로서의 결연한 의지다.

▼김동명은 1900년 강릉시 사천면 노동하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함흥으로 이주, 중학교를 다녔고 일본 도쿄 아오야마학원 신학과와 니혼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했다. 귀국 후 흥남과 평안남도 강서지역 등의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47년 혈혈단신 월남해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시인이면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했으며 1960년 초대 참의원에 당선, 5·16 직전까지 정치인 생활을 했다. 1968년 서울 남가좌동 자택에서 타계, 망우리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초허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대표적인 전원파 시인으로 꼽힌다. 가곡으로 널리 친숙해진 시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그러나 일제의 일본식 성명 강요를 거부한 민족적 저항시인이었고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군사정권에 항거했던 진정한 종교인, 평생 교단에서 미래를 밝힌 교육자였다.

▼초허가 102년 만에 귀향, 영면에 들었다. 유족, 경주김씨 수은공파 강릉 사천종중 후손들이 지난 10일 초허의 유골을 그가 어린시절 뛰어 놀던 고향의 종중영원(宗中靈園)으로 이전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다.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눈 높이 쌓인 곳에 내 무덤을 파겠나이다”라고 시구에 적었던 초허의 소원성취일 테다. 문향, 예향 강릉의 값진 문화적 자산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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