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법대로'

관료제에 관해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독일의 막스 베버는 관료란 근본적으로 몰인정적(沒人情的·Impersonal)이라고 했다. 거기에 명령과 복종의 계층제를 형성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관료제라고 보는 시각과 연관된다. 따라서 관료란 영혼을 버려야 출세가 빠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영혼을 팔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세론(世論) 또한 이러한 시각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가 없다.

▼사회적 정의 실현이 국가적 과제가 되어 한때 국가발전의 축을 이루었던 공무원은 이제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 사정의 주된 표적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 국가발전과 국민 복리에 기여해야 한다는 소신에따라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보다 소극적으로 법대로만 업무를 처리해 사정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 낫다는 자조적 의식이 팽배하게 된다.

▼과거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뛰었던 공무원들의 그 적극적이고 과감했던 '행정'이 사라졌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공무원들이 법대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법대로'가 냉소적으로 변하면 '복지부동'의 핑곗거리로 전락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무원이 법대로만 하는 것은 '합법적인 태업(Sabotage)'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본래 행정은 법의 영역 안에서 법이 예정하지 못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조정·관리하는 행위 전반을 의미한다.

▼정부가 최근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삼성 출신의 민간전문가를 영입했다. 공무원 개혁을 공무원에게 맡길 수 없다는 선언이다. 실적을 최우선시하는 '삼성 유전자'로 정년이 보장된 공직사회의 '철밥통'을 깨뜨리겠다는 실험이 그야말로 성공할지 주목된다. “공직사회는 무쇠도 녹인다”고 했기에….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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