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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시래기'

“하늘에 걸린 쇠기러기 벽에는 엮인 시래기/시래기에 묻은 햇볕을 데쳐/처마 낮은 집에서 갱죽을 쑨다/ 밥알보다 나물이 많아서 슬픈 죽/훌쩍이며 떠먹는 밥상 모서리/쇠기러기 그림자가 간을 치고 간다.” 안도현 시인의 시 '갱죽'이다. 무 이파리인 무청을 말린 것이 시래기다. 전쟁과 가난,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궁핍했던 시절 처마 밑에 걸어 말려둔 시래기에 보리쌀 한 줌과 된장 한 주걱을 넣어 푹 끓여낸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온 가족이 겨울을 났다.

▼우리나라가 빈곤에서 벗어나며 잊혔던 시래기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구황식품에서 웰빙식품으로 변신했다. 구수하고 깊은 맛에 식이섬유가 많고 철분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다. 간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한 연구소의 실험 결과로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동맥경화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된장국 나물 전 등 요리도 다양하다. 감자탕과 민물 생선찜 등에도 빠질 수 없는 식재료다.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Punch Bowl)에서 생산되는 시래기는 부드럽고 풍미가 좋아 전국 최고의 명품 농산물로 자리 잡았다. 비무장지대에 인접한 청정 자연환경과 큰 일교차가 고품질의 비결이다. 이곳에선 감자 배추 등의 수확이 끝난 후 보통 8월 중·하순 파종을 시작한다. 50여 일간 키운 뒤 10월 중·하순에 수확해 1~2개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건조해 상품으로 판매를 한다.

▼펀치볼에서는 무청이 잘 자라는 '시래기 전용 무' 품종을 선택해 재배하고 있다. 이 지역주민들이 20, 21일 이틀간 해안휴게소 광장 일원에서 '양구 DMZ 펀치볼 시래기축제'를 개최한다. 시래기 덕장을 둘러보며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트랙터 마차 타기와 무 껍질 길게 깎기 등 이벤트도 마련됐다. 동지 추위가 기승을 떨치고 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이 그리운 날이다.

김석만논설위원·smkim@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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