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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자식, 부모의 수난

'천륜(天倫)'이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인연이다. 비록 지긋지긋한 부모, 속만 썩이는 자식이라도 말이다. 선친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그룹 임원들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포한 자리에서 한 말의 역설적인 의미가 그렇다. 이 회장은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 ▼인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관계, 절대적이기에 '자식의 최고 스승은 부모'라고 한다. 공자가 자식을 퉁명스럽게 대한 속뜻도 그래서다. 객관적 시각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자를 3,000명이나 둔 공자였지만 정작 외아들 '백어'를 별도로 가르치지 않았다. 사심이 묻어날까 봐 조심스럽게 스치는 말로 “시는 배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 게 고작이었다. ▼'자식 농사'라고 한다. “노후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자식에게 투자하겠다”고 하는 말의 속뜻이다. 행여 잘못될까 봐 금지옥엽으로 대하는 이유다. 누구나 그렇기에 '자식 자랑'을 팔불출 중에 하나로 꼽는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경우의 애통함을 일컬어 '가슴에 묻는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대로 기대에 어긋나는 정도를 넘어 천륜을 저버리니 이는 '패륜(悖倫)'이다. ▼자식으로 인해 고개를 떨구는 아버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더구나 고위층 인사들이 자식의 부적절한 처신, 범죄 행위로 곤욕을 겪고 있다. 법정에서 부녀 간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가 하면 이역만리를 찾아가 아들을 데려다 수사 당국에 인계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는 범인을 용서했다가 자초지종을 알고 나서 분노하고 있다. 그래도 '무자식 상팔자'는 아니다. 천륜에 얽힌 부모들의 수난이 애처로울 뿐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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