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인스턴트 입법' 남발,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의원입법은 10명 찬성 얻으면 법안 제출 가능

정부 제출 법안보다 절차 간단해 부실 불러와

'엉터리 법안' 양산 방지 국회 차원 대책 '시급'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처리 과정은 국회의 법안 심의 질적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장 정치권에서도 김영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 규제 대상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임직원까지 포함되면서 사립초·중·고교법인협의회 등에서는 헌법소원 청구를 위한 법리검토를 하고 있다. 여기에다 위헌 소지가 다분한 '김영란법'의 졸속 강행 처리를 계기로 국회의원들의 '입법 독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포퓰리즘에 입각한 법안을 마구잡이로 통과시키는 데 대해 '위헌성 심사' 등 규제 장치가 어떤 형태로든 마련돼야 한다.

공직자의 부당한 금품 수수를 알고도 업무연관성을 입증 못 해 처벌할 수 없었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발원(發源)된 '김영란법'이 전혀 엉뚱한 법으로 바뀌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실제 김영란법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법안 심사를 담당하는 법안심사소위원회, 위헌 여부를 포함해 법안체계를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여론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입법조사처 조언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위헌 요소를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과정이 얼마나 요식행위에 불과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들의 '인스턴트 입법'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서둘러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법을 만드는 권한인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고'(제40조), '법률안은 국회의원과 정부가 제출할 수 있다'(제52조)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의원입법, 정부가 발의하면 정부입법이다. 정부입법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전에 입법예고와 공청회, 관계부처 논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문제를 미리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의원입법 과정은 정부입법과 같은 절차가 없다. 법안 발의자는 자신을 포함해 10명의 찬성을 얻으면 법안을 의장에게 제출할 수 있다. 이런 의원입법의 장점은 무엇보다 신속함이다. 그러나 정부입법에 비해 절차가 간단해 법안 내용이 부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부처와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정부와 큰 갈등을 겪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이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에 포함시켜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택시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국회는 입법부가 아니라 '통법부(通法府)'라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고 정부에서 요청하는 법안을 통과만 시키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지금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의원입법이 16대 국회 1,912건에서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본회의 통과율은 10~20%대로 정부입법(40~50%대)보다 아주 낮다. 의원입법의 부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의원들이 실적 쌓기용으로 법안 발의 건수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엉터리 법안'이 양산되고 있다. 의원입법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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