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역(逆)인센티브'

1990년대 초 화장품 회사 더바디샵(The Body Shop)이 아프리카 가나산(産) 시어버터(크림·로션 등의 원료)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사준 일이 있다. 부유한 선진국 소비자들이 후진국 물건을 후한 값에 사들여 주자는 거다. 하지만 이러한 선의가 불러온 후폭풍은 참담했다. 너나없이 시어버터 열풍에 뛰어들어 1년에 2톤쯤 되던 생산량이 20톤으로 늘었다. 농민들은 높은 가격을 많은 수요의 신호로 착각했다. ▼가난한 커피 농가를 돕자며 등장한 '공정무역 커피(Fair Trade Coffee)'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이 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한 건 커피 가격이 파운드당 3달러에서 50센트 이하로 곤두박질친 2000년대 초. 공정무역 옹호론자들은 생산자들에게 비싼 값을 지불해 가격 하락을 막아내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그 무렵 전 세계 커피 원두의 수요는 연간 1억500만 자루(1자루=60㎏). 그보다 공급이 1,000만 자루나 과잉인 게 근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생산을 대폭 줄여야 할 판에 값을 높이 쳐주는 건 역(逆)인센티브다. ▼이런 오류를 인식한 구호단체 '옥스팜(Oxfam)'이 좀 더 솔직한 제안을 했다. “아예 선진국들이 돈(약 1억 달러)을 갹출해 커피 500만 자루를 사서 폐기해 버리자!” ▼우리 정부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그동안 쌀을 수매하는 정책을 써 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3일부터 2016년산 쌀 39만톤의 매입을 시작했다. 매입량은 공공비축용 36만톤, 해외공여용 3만톤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정부 수매가 급한 불은 끌지 모르나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쌀 한 가마니조차 안 먹은 지 오래고 재고는 무섭게 쌓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쌀 문제는 수요가 늘든, 생산이 줄든 해야 풀린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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