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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DMZ의 발화(發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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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폭염, 게릴라성 물폭탄, 불볕 열기, 더위와의 전쟁. 세간에서 쓰는 문구마저 무시무시하다. 등골이 오싹해야 하지만 워낙 시달릴 통에 무감각해진 불감증 체질화다. 더구나 혹염(酷炎)에 바람마저 증발해버린 날씨여서 그 질긴 들풀들마저 누렇게 말라비틀어지고 있어 애처롭다. ▼참전했던 노병이 “전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적군이 아니라 살을 에는 추위였다”고 실토했다. 무더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양구군 해안면, 일명 '펀치볼(Punch Bowl)' 지역이 애환을 읽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고지를 뺏고 빼앗기기가 거듭된 공방전, 백병전 혈투까지 벌이다 보니 '주먹' 또한 난무했을 것임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광활한 대지가 강한 펀치를 맞아 짓눌린 형국이어서 '펀치볼'이라고 불렀다는 속설이 숙연하게 한다. 인근에 '피의능선전투 전적비'가 세워졌으니 살벌했을 당시의 발화(發火) 총성이 귓속에 꽂히는 느낌이다. ▼그 비극의 현장, 펀치볼 마을에서 어제(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2018 DMZ 아트페스타'가 열리고 있다. 강원문화재단이 2018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고성 통일전망대 일원에서 펼친 행사를 이곳으로 옮겨 왔다. 분단의 한(恨)이 서린 곳에 평화를 심는 퍼포먼스다. 3,000여명의 아티스트가 평화를 기원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쳐낸다니 주목된다. ▼행사 주제 또한 심오하다. '꽃이 피다:발화(發花)'다. 평화를 상징하는 '꽃'이 피어나듯, 예술제를 통해 평화와 행복을 기원한다는 설명이다. 하여 원로시인 인태성 선생의 등단작 '발화(發花)'를 읊조리게 된다. “(…)// 속 깊이서 솟치던 빛과 빛이/ 참다 더는 참을 수 없는 극한에서/ 활짝 열리면서// 아 번뇌로운 생명이여/ 눈부신 분수(噴水).”

용호선논설위원·yong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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