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공무원 골프 십계명'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는 1457년 3월6일 국민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포고령을 내렸다. “축구와 골프를 절대 금지한다. 지금 우리나라(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위협에 처해 있다. 모든 남자는 무술 연마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태만히 하고 축구나 골프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왕명으로 이를 일절 금지하노라.” 하지만 왕의 생각과는 달리 국민은 골프의 마력(魔力)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471년 5월6일 제임스 2세의 아들인 제임스 3세가 또다시 '골프금지령'을 내렸다. 그러자 귀족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공직자 기강 확립 차원이라는 미명 아래 골프금지령이 자주 내려졌다. '공무원 골프 십계명'이란 게 있다. 현충일과 6·25는 피할 것, 정권 초기와 인사철엔 몸조심할 것, 민원인은 피할 것 등…. ▼김지하가 1970년 발표한 풍자시 '오적(五賊)'에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 모여 골프대회를 여는 대목이 나온다.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시합을 벌이는데/ …/ 저마다 골프채 하나씩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秘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당시만 해도 골프를 고위공직자와 돈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부패의 고리처럼 보는 시선이 많았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재판에 나올 수 없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멀쩡하게 홍천에서 골프 치는 모습이 최근 공개돼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재작년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지난해 5월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골프를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전 전 대통령에 얽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의 골프회동이라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상황인식이 일반인과 같아서는 곤란하다.

권혁순논설실장·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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