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춘천]“장소 바뀐다고 45년 빵맛 어디 가나요”

◇45년 전통의 빵집 춘천 대원당이 약사천 복원공사로 인해 효자동을 떠나 퇴계동에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창업주인 윤용호·문명자씨 부부와 아들 장훈씨가 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춘천=김효석기자

대원당 퇴계동서 새출발

배고파 앙금 몰래 먹던 소년

춘천·서울 오가며 기술 배워

1968년 약사리고개에 가게 내

약사천 복원에 매장정리 시련

고령 감안 은퇴 생각하기도

가업 잇는 아들 위해 새 도전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6년 여름 어느 날, '아이스께끼'를 팔던 16살 소년은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춘천시 중앙로의 한 건물 지붕 아래로 몸을 피했다. 뉴욕제과였다.

때마침 건물 밖에서 팥에 설탕을 넣고 앙금을 쑤고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소년은 주위의 눈을 피해 냉큼 손가락으로 앙금을 찍어 입 속에 넣었다. 난생 처음 맛본 '황홀함'이었다. 그게 '반세기 넘는 제과제빵 인생'의 시발이었다.

1968년 이래 45년간 춘천 대원당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윤용호(73)씨의 얘기다. 전국의 유명 빵집들을 순례하는 데 빵 마니아라면 꼭 거치는 가게 중 하나가 춘천 대원당이다.

울진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3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도계, 묵호를 거쳐 춘천에서 공장이나 식당 등 '굶지 않기 위해' 갖은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만난 뉴욕제과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거북당, 맛나장 등 당시 춘천의 유명 제과점은 물론 서울의 충무로 태극당, 연세제과 등 서울과 춘천 10여곳에서 기술을 익혔다.

윤씨는 “주인의 손맛에 따라 빵맛이 다르다 보니, 많은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여러 제과점을 옮겨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던 1968년 그는 소자본으로 약사리고개에 찐빵집을 열었다. 제과제빵 기술을 배운 지 10여년 만이었다.

값싸고 맛 좋다는 입소문이 나며 '대원당'은 번창했다. 1985년 춘천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던 해 효자동에 4층 건물을 세웠다. 본점에 이어 강원대점, 명동점까지 문을 열었다. 한때 직원이 60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프랜차이즈 빵집이 확장되고, 은행 돈을 끌어다 확장한 사업 분야는 고전했다. 다시 본점만 남았다. 시련은 또 다시 찾아왔다. 건물이 약사천 복원사업 및 수변공원 조성계획에 편입되면서 떠나야 했다. 결국 45년간 지켜왔던 효자동을 뒤로하고, 13일 퇴계동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퇴계동 호산부인과 본원 건물 옆, 공영주차장 건너편 1층 건물에 임대로 들어섰다. 칠순의 나이를 넘긴 그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만 쉴까도 생각했지만, 가업(家業)을 잇는 둘째 아들 장훈(43)씨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빵 만들기를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빵은 사람과 똑같다. 겨울 추위에 피부가 닭살 돋듯 빵은 거칠어지고, 여름에는 더위에 축 늘어지기 마련이다. 그에 맞게 반죽, 발효 정도, 타이밍, 온도, 재료 등에 온갖 정성을 들여야 제맛이 난다”고 말했다. 45년간의 비결은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빵이 맛이 있을리 없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춘천=류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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