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모란꽃 한 송이 수놓은 자수 어머니 얼굴이 어렸다, 미친 듯이 자수를 모았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평생 교수에서 동양자수박물관에 열정 쏟는 안영갑씨

◇안영갑 동양자수박물관장은 연세대 원주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정년 퇴임 후 강릉시 죽헌동에서 자수(刺繡)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그는 26년간 수집한 수준 높은 자수 작품 650여 점을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다(사진 위쪽). 안영갑 관장 부인 최민 씨는 전통자수 문양이 담긴 액세서리와 가방 등을 직접 만들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다. 강릉=권태명기자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워 시작

모란꽃서 나비로, 새로, 난초로

동양·서양·궁중자수까지 확장

컬렉션에서 빠진 작품 꼭 찾아

수집가 편집증 아편보다 무서워

26년 수집 강릉자수 알린 계기

남자 지갑 '강릉 색실 누비 쌈지'

100년 전에 명맥 끊겼는데

그 디자인 새삼 다시 주목받아

샤넬? 프라다? 다 저리 가라 해

1984년, 5년간의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낯설었다. 어머니가 안 계신 고향은 허전했다. 그저 어머니의 향기가 그리웠다. 허전한 마음을 미술품 수집으로 달랬다. 처음에는 민중미술에 몰두하다 회화로, 고미술로 수집품은 바뀌었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쉬는 날이면 서울 인사동을 헤맸다.

1987년 어느 날, 모란꽃 한 송이를 수놓은 자수작품을 만났다. 모란꽃 한 송이에 어머님의 얼굴이 어렸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만난 것 같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안영갑(66) 동양자수박물관장의 자수 수집가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군 복무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난 듯했습니다. 어머님은 전주 분이셨는데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전 6남매의 막내로 어머님의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의 채취가 그리워 시작했다. 모란꽃에서 나비로, 나비에서 새로, 난초로 회화자수작품을 정신없이 수집했다. “자수에는 가족의 건강과 화목, 만복을 기원하며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를 놓는 어머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단계가 올라갈수록 안목은 높아지고 이론이 곁들여지면서 자수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회화자수가 중심이었으나 차츰 관심이 전통 한국자수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2003년부터는 동양자수로 영역이 넓어졌고 서양자수도 곁들여 수집하게 됐다.

생활자수는 경제적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전통자수로 확장이 되면서 흉배를 모아야 했고 프로로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궁중자수까지 수집영역을 확장했다. 궁중자수는 워낙 귀해 부르는 게 값이었다. “자수 컬렉션은 투자가치가 아닌 이론에 맞는 작품과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컬렉션에서 빠지는 작품은 꼭 찾아서 수집해야 직성이 풀렸죠. 그래서 수집가들끼리는 수집가의 편집증은 아편보다 무섭다고들 해요.”

2004년 강릉시 여성회관에서 첫 개인소장품 전시회를 했다. 그리고 인연이 이어져 2005년 7월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개인 소장품 특별전시회를 했다. 동양자수박물관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2005년 전시회를 하며 자연스럽게 무르익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었는데 학교 은퇴 후 박물관을 열고 문화사업을 하며 노후생활에 보람을 느껴도 좋겠다는 생각에 자수박물관을 할 곳을 찾아 헤맸지요. 아내의 고향이 자수의 본고장인 강릉이어서 자연스럽게 강릉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강릉에 자수박물관을 만들려고 부지를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구)경포초교 2층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양자수박물관을 만들게 됐다. 동양자수박물관에서 안 관장이 가장 아끼는 전시코너가 바로 강릉자수 코너다. 자수의 본고장이 강릉이라지만 그 실체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안관장은26년 동안 자수 작품을 수집하면서 강릉자수 컬렉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장의 고(故) 성기희 여사님이 1993년 강릉 전통보자기전을 개최하셨는데 전시회를 둘러보던 저에게 강릉자수 수집을 권유해 그때부터 강릉자수를 모으기 시작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강릉 수보는 물론 강릉 조각보, 강릉색실 누비 쌈지까지 추상적 디자인에 예술적 아름다움을 겸비한 강릉자수를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안관장의 지극한 강릉자수 사랑 덕택에 100년 전 명맥이 끊긴 강릉 색실 누비 쌈지도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릉 색실 누비 쌈지는 담배나 부싯돌 등 필요한 소지품을 넣는 남자들의 지갑인데 특이한 것은 누비 쌈지 사이에 솜이 아닌 한지를 꼬아 속을 채우고 한 땀 한 땀 민수로 누벼 지갑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작기간만 6개월이 걸리는 엄청난 정성과 품이 담긴 지갑이다.

강릉색실 누비쌈지의 문양은 나무, 꽃, 나뭇잎 등 자연물의 모양을 선으로 단순화시켜 정방형이나 대칭형, 그리고 비대칭으로 자유스럽게 뻗어나간다. 무명천에 오방색의 색실이 화려함과 세련미를 더했다. “강릉의 자수문화는 정말 독특하지만 이 누비 쌈지는 더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릉에만 있는 독특한 미조형의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어요. 어떻게 200년 전 여인들이 이처럼 현대적인 디자인을 만들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샤넬? 프라다? 다 저리 가라고 하세요. 우리에게는 강릉색실 누비 쌈지를 만든 강릉 여인네들의 강릉디자인이 있습니다.”

안 관장과 부인 최민씨는 이런 강릉 색실 누비를 2018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릉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강릉의 다양한 색실 누비지갑을 해체해 문양을 그대로 본떠 도안을 만들었다. 이 도안을 바탕으로 가방, 지갑, 옷, L자 파일 등에 강릉 색실 누비 문양을 응용해 다양한 디자인의 상품을 만들고 있다. 반응이 좋다. 현대적인 디자인인 까닭에 200 년 전 강릉여성들이 만든 디자인이라는 설명을 해 주면 관람객들이 깜짝 놀란단다.

안 관장과 최민 부부는 강릉자수에 얽힌 다양한 문양을 가지고 세계적인 문화상품을 만드는 것, 색실 누비와 강릉수보로 디자인해 강릉을 자랑하고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수를 통해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 교류는 물론 강릉을 찾는 모든 외국인에게 강릉자수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강릉자수를 알리고 명맥을 잇게 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이야기했다.

안관장은 “가장 큰 소망은 강릉사람들이 강릉이 자수의 본고장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우리 박물관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며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사랑받는 박물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경영마케팅을 전공해 29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왔던 안영갑 관장은 지난해 8월 퇴임한 후 강릉자수 알리기에 마지막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있다.

“평생 경영학과 교수로 지냈는데 이제는 박물관 경영을 제대로 해 봐야지요. 소일삼아 박물관을 연 것이 아닌 제2의 인생으로 새로운 강릉의 창조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안 관장의 다짐이다.

강릉=조상원기자 jsw0724@kwnews.co.kr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