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나라 위해 싸웠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 47년 만에 파편 뽑은 국가유공자의 눈물

월남전 참전용사 삼척 우원하씨

◇우원하(69)씨가 지난달 29일 강원대병원 병실에서 47년 간 자신의 몸 안에 있던 박격포탄 파편을 바라보고 있다.

병세 악화 상이등급 재심 요청 7단계서 '등급 외'로 혜택 줄어

도내 상이급수 유공자 4,422명 희생에 합당한 예우·정책 필요

지난달 29일 강원대병원에서 왼쪽 허벅지에 박혔던 파편 제거 수술을 마친 우원하(69·삼척)씨는 병실로 옮겨와서도 별 말이 없었다.

1967년 국가의 명을 받아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맞은 포탄의 파편을 뽑아내지 못한 채 다리를 절며 살아온 지 47년. 그 오랜 상처로 남아있던 파편을 없앴으면 기뻐할 만도 했지만, 우씨는 오히려 비참함을 느꼈다.

“비록 몸은 성치 않았어도 단 한 번도 나라를, 정부를 원망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국가를 위해 싸웠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네요….”

그의 절망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한 해 전 월남에 파병돼 파편을 맞고 더욱이 무기 수송을 하다가 트럭이 전복되는 바람에 허리와 꼬리뼈를 크게 다친 우씨는 23세 때 돌아왔다. 꽃다운 나이였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파편을 맞은 왼쪽 다리는 절어야 했고 허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가정형편상 수술은 엄두도 못 냈다.

태백이 고향이던 그는 부모에게 의지해 20여년을 집에서 누워있다시피 했다. 한때 결혼도 했으나 성치 않은 몸으로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결국 1989년, 혼자 삼척으로 나왔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오갈 곳이 없어 며칠을 노숙 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의탁할 곳을 찾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집 주인이 현지의 주택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그곳에 살게 해 줬던 것. 물론 전기료, 수도세 등 공과금은 그의 부담이었다.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외지에서 식당 일을 하는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입에 풀칠은 했지만 다친 허리와 왼쪽 허벅지의 상태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악화됐다. 주변의 도움으로 2004년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 다행히 상이 7등급 판정을 받아 월 45만원씩 받았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우씨는 몸 상태가 더욱 좋지 않게 되자 재심을 요청했지만 검사 결과 상이등급이 7단계에서 오히려 '등급 외'로 떨어진 것. 다친 곳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매달 지원받던 45만원은 17만원으로 줄었다.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던 그는 8개월간 하루 한두 끼만, 그것도 대부분 라면을 먹어야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결국 지난 6월 그는 강릉보훈지청장을 상대로 원래 등급을 회복하게 해달라는 취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 제출할 증거로 47년간 박혀있던 파편을 뽑았다. 강원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것도 이 같은 이유였다.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게 차라리 내 탓이었으면, 그럼 나라를 원망이라도 하지 않았을텐데, 몸에는 아직도 파편이 남아있는데 그걸 인정해주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씨는 다시 법정 다툼을 해야 한다. 재판결과 7등급을 회복한다고 해도 그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겠지만…. 아직도 도내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도 어렵게 살고 있는 상이급수를 가진 국가유공자가 4,422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아직도 미비하기만 하다.

박희창 대한민국월남참전자회 도지부장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국가유공자들은 대부분 병마와 싸우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들의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예우와 보훈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모기자 kmriv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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