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세상 명함 다 버리고 오로지 부처님만 생각 여기가 곧 극락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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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의회 부의장 출신 영월만봉불화박물관장 최복숙씨

◇영월 만봉불화박물관에는 만봉 스님의 불화 140여 점, 불화의 밑그림인 초 40여 점, 유품, 유물, 제자들이 그린 불화 등 2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진은 최복숙 관장이 전시관에서 유품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영월=오윤석기자 papersuk1@kwnews.co.kr

한때 회장·총재·의원 수많은 활동

만봉 스님 섬세한 불화에 반해

모두 내려놓고 산사로 들어와

150억원 들여 박물관 등 지어

불화·유품·유물 250여점 전시

불교 미술사 대표하는 곳 되길

내년봄 완공 만봉사 마무리 한창

편안히 기도하고 쉬어갈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도량 만들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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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읍내에서 40여분 거리인 만봉불화박물관 가는 길은 영월 사람도 지칠 만큼 산길을 돌고 도는 긴 여정이었다.

만봉불화박물관을 운영하는 최복숙(74) 관장은 전 서울시 강서구의회 부의장 출신이다.

한때 '봉사의 여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이름 뒤엔 늘 회장, 총재, 이사, 의원 등의 명함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김삿갓면으로 들어오면서 도시의 화력한 이력은 모두 사라지고 절밥을 먹고 사는 산사람만 남았다.

그녀는 “2010년까지 강서구의회 부의장을 지내며 강서지역 발전을 위해 후회 없이 보냈다. 지역구로 출마하라는 이야기도 있어지만 남은 일은 정치후배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 자연인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2013년 5월 해발 1,000여m 되는 김삿갓면 예밀리 망경대산 수림 3만9,660㎡ 부지에 만봉불화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과 함께 건립 중인 사찰 만봉사는 내년 봄 완공을 목표로 대역사가 진행중되고 있다. “의원을 그만둔 뒤 김삿갓면 깊은 산골에 150억원을 들여 절을 짓고 박물관을 운영하겠다고 하니 다들 미쳤다고 했죠”

만봉사는 전통적인 기와집 형식이지만 화재를 염려해 대형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지고 있다. 만봉사 정문 좌우로는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다. 법당은 아파트 5층 높이에 달할 만큼 웅장하다. 만봉(1910~2006년)스님이 그린 불화는 법당을 중심으로 6개 전시실에 산재해 있다.

만봉 스님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이자 한국불교미술의 거장이었다. 스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김예운 스님 아래서 불화를 배운 뒤 1926년 봉원사로 출가했다. 스님이 그린 단청과 불화는 섬세함과 생동감이 넘쳐난다. 스님은 97세로 열반에 들기까지 하루 온종일 손 떨림 하나 없이 탱화작업에 몰두했다.

최 관장은 “스님은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도 도장도 없이 된장국에 밥새끼 훌훌 말아 드시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관없이 그림만 그렸다”며 “스님의 가슴과 머리에는 부처님밖에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스님의 붓끝을 거쳐 시방세계에 탄생된 불보살은 수없이 많다. 70여년 동안 남북한 사찰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북한 금강산의 표훈사와 유점사, 장안사, 마연사의 단청을 도맡았다. 서울 도봉산 도선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서울 봉원사 등 주요 사찰과 경복궁 경회루를 비롯해 종로 보신각 숭례문(남대문) 남한산성 등 문화재 단청도 그렸다.

최 관장과 만봉 스님의 인연은 1981년에 시작됐다. 스님이 최 관장에게 자신의 불화 전시회를 열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 전시회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봉원사 명부전이 지어졌다. 그 후 스님이 입적하는 2006년까지 25년간 인연은 이어졌다.

최 관장은 그동안 만봉불화전승회를 발족시키고 수십 회의 전시회를 열면서 140여 점의 불화를 구입했다. 전시회 도록부터 불화 달력까지 만봉 스님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최 관장은 이들 불화를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봉 스님도 예운 스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시왕초(十王草) 등의 불화와 자신이 그린 불화를 내줬다.

최 관장은 “스님 작품을 계속 수집하다 보니 창고에 그림이 가득했다. 소중한 작품이 그대로 사장되면 부처님한데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불화박물관과 절을 건립하는 대역사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만봉불화박물관은 6개의 전시실, 영상실과 세미나실, 불화체험실과 시연실, 수장고로 이뤄져 있다. 이곳 박물관에는 만봉 스님의 유품과 유물 250여점이 전시 및 보관돼 있다.

만봉스님의 작품 중 가장 많은 것이 관세음보살도다.

만봉사의 대역사는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사찰 경내 및 외벽 곳곳에는 만봉 스님의 제자들이 나서서 대형 탱화를 입히고 있다.

최 관장은 “영월 만봉불화박물관이 천년고찰처럼 면면히 이어지며 우리나라 불교미술사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됐으면 좋겠다”며 “특히 만봉사는 모든 사람이 왕래하며 편안하게 기도하고 쉬어가는 도량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지난 8월 초 광복절을 앞두고 500만원 상당의 태극기를 영월군재향군인회 등 관내 12개 안보·보훈단체에 기증했다. 그녀는 “태극기 보급 및 나라사랑 운동은 서울에서도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라며 “앞으로 영월주민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현세에서 극락세계를 표현하고, 조용히 서방정토로 떠난 만봉 스님의 청빈한 삶을 누군가는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최 관장은 “부처님을 너무나 사랑했던 만봉 스님의 뜻을 받들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과 불사를 지어 포교에 나서겠다”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영월=김광희기자 kwh635@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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