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대중가요사의 전설' 박건호, 그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공무원 퇴직 후 지역 발전에 앞장선 박수준(74)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수준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후원금을 모아 박건호 노랫말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에 기탁했고, 지난 2008년 12월 원주 무실동 박건호공원에 노랫말 기념비를 제막하는 결실을 거뒀다(사진 왼쪽), 박수준 이사장은 야간 고등학교만 졸업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동기 중 승진이 가장 빨라 화천군수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사진 오른쪽 위), 박수준 이사장은 공직 시절 강원일보 기사를 모아 병풍으로 만들어 집에 보관하고 있다. 원주=오윤석기자

화천군수 등 요직 두루 거쳐

29년10개월 공직생활 끝내고

퇴임식 마다하고 고향 원주行

"지역 위해 10년만 봉사하자"

구석구석 굵직한 사업 해내

'단발머리' '모닥불' 불후의 명곡

작사한 박건호 선생 흥업 출신

그 이야기 듣고 깜짝 놀라

선후배들과 선양사업 뜻 모아

공원 만들고 기념비 제막 성과

“7080 대중가요계를 말하자면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트렌드를 선도한 고(故) 박건호(1949∼2007년) 선생은 한평생 무려 3,000여곡을 작사했고 그중 800여곡을 히트시켰습니다. 대중가요사에 전무후무한 대기록이자 전설입니다. 불후의 작사가 박건호 선생은 무궁무진한 문화적 자산입니다. 그를 기리고 선양하는 일은 어느 지역에도 없는 원주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지키고 가꾸는 역사적 사명입니다.”

지난 9월26일 원주 무실동 박건호공원에서 열린 2014 박건호가요제는 그 어느 해보다 성황을 이뤘다. 공원에 모인 1,300여명의 시민의 환호 속에서 박건호 선생의 아름다운 노랫말은 다시 전설이 됐다. 그동안 그가 태어난 고향 원주에서조차 박건호 선생의 존재와 가치를 충분히 아는 시민들이 많지 않았지만 올해는 박건호 선생과 그의 노래가 작고 후 최고로 주목을 받은 해였다.

(사)박건호기념사업회와 강원일보사가 2008년부터 박건호 선생을 위한 다양한 선양사업을 펼친 결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수준(74)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있다. 공무원 명예퇴직 후 지역 발전을 위해 앞장서던 박 이사장은 박건호 선생을 원주를 대표하는 세계적 문화 아이콘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0년만 하자며 시작한 봉사

박 이사장은 1999년 6월 29년10개월간의 공직생활을 끝냈다. 정부가 자치단체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당시 도 자치지원국장 자리에 있던 그는 조직 개편을 완료한 후 자신도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만을 졸업한 핸디캡에도 동기 중 승진이 가장 빨라 화천군수, 도 감사실장, 자치행정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기에 미련은 없었다. 퇴임식도 마다하고 고향인 원주시 흥업면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박 이사장은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니 고향에 도움을 준 게 없었다”며 “원주를 위해 딱 10년만 봉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언제나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인물로 유명하다. 원주 근린공원 농민탑 건립에 큰 역할을 했을 때는 제막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고 삼육고 강당 건립, 육민관고 잔디 구장 조성 등 굵직한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지역 발전을 위한 단체 및 학교부터 작게는 경로당까지 맡고 있는 고문 자리만 셀 수 없을 정도다. 봉사활동 역시 마찬가지다. 10여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어려운 이웃에 도움을 줬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이들은 박 이사장을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모르게 하는 것, 언제나 박 이사장은 그 정도의 역할에 만족했다. 그랬던 그가 2009년 박건호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고부터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건호 선양사업은 가장 원주적인 사업

박 이사장이 박건호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흥업'이라는 작은 인연 때문이었다. 박건호 선생의 고향 마을은 원주시 흥업면 사제1리 봉현마을로 박 선생은 이곳에서 1949년 2월19일 태어나 흥업초, 원주중, 대성고를 졸업했다.

퇴직 후 고향 흥업면 밤골마을에서 생활하던 박 이사장은 2007년 12월 세상을 떠난 박건호 선생이 원주시 흥업면 출신이라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박 이사장은 “알고 보니 '단발머리''모닥불' '아! 대한민국' '빙글빙글' '잃어버린 30년' 등 지금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노래들의 작사가가 원주 흥업 사람이었다”며 “고향 선후배, 친구들은 물론 지인, 문화예술계 인사 등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양사업을 하자는데 뜻을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흥업초교총동문회장이었던 박 이사장은 기별로 후원금을 모아 박건호 노랫말 기념비 건립추진위원회에 기탁했고 이처럼 뜨거운 고향마을의 후원 열기는 원주 전역으로 확산, 2008년 12월 노랫말 기념비가 제막됐다. 이어 박 이사장이 초대 이사장을 맡아 2009년 3월 발족한 박건호기념사업회는 무실동 시청 앞 공원이 박건호공원으로 정식 명명되는 성과를 거둔 것을 비롯해 공원에 노랫말비 30개, 가수 임수정 노래비 등을 제막하고 박건호가요제와 박건호 시인 추모음악 및 시낭송회, 박건호 노랫말 공모전 등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박건호 선양사업을 가장 원주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박건호가요제가 원주의 문화 아이콘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문화콘텐츠가 부족한 지역에 소중한 재산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건호 선양사업은 아직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박건호 선생을 문화자산으로 지역이 먹고살고 시민들은 교육·문화·예술의 도시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도록 하는 것, 박 이사장이 목표하는 바다.

그리고 선양사업이 확실하게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해야 하는 때가 되면 또다시 미련 없이 물러나 그를 필요로 하는 다른 일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이사장은 “박건호 선양사업에서는 확실한 기틀을 잡는 것까지가 내 몫”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의 신조에 따라 길을 간다면 어떤 자리에 있든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며 “살아온 과거가 배고프고 어려웠던 만큼 고향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생의 마무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원주=김설영기자 snow0@kwnews.co.kr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