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2막, 새 삶을 산다]죽음의 문턱에서 꿈을 찾았다

대장암 3기 이겨내고 20여년 `화가의 길' 김명숙 작가

◇'바느질을 통해 표현하는 화가'로 알려진 김명숙(66) 작가가 춘천 감정리 연산골 개인 작업실 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왼쪽) 박승선기자

27년 미술교사로 제자 양성에 힘써

항암치료 고통 오직 꿈으로 버텨

건강 되찾고 작품에 모든 에너지 쏟아

섬유작업 통한 독특한 세계 호평

"자연과 한 몸 되어

어떤 환경도 불평하지 않으며

항상 낮은 모습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삶 살려고 해요"

춘천 감정리 연산골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개인 작업실에는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예술작품이 벽마다 빼곡히 걸려 있었다. 이곳은 부드러운 섬유작업을 통한 독특한 작품세계로 호평받고 있는 서양화가 김명숙(66) 작가가 매일같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각종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쉬는 소중한 곳이다. 27년간 교육계에 몸 담았던 김 작가가 인생 2막을 새롭게 열고 오랫동안 꿈 꿔왔던 화가의 꿈을 완성해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바느질을 통해 표현하는 화가'로 알려진 김 작가는 1970년 경희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뒤 1983년까지 춘천 성수여중·고에서 근무하며 14년간 도내 중등 미술교사로 활동, 제자 양성에 힘써왔다. 이후 1983년부터 1996년까지 미술학원과 유치원을 운영하며 예술가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해 왔다.

하지만 1996년 대장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동안 살아 왔던 삶을 돌아본 김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다시 걷기로 결심한다. 건강해야 꿈을 향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간절함은 김 작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항암치료를 받는 고통의 시간은 화가라는 꿈이 있었기에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건강을 되찾은 김 작가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작품활동에 미쳐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66세가 넘은 나이,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작품활동에만 쏟아붓고 있다. 움직이는 것과 정지해 있는 것, 살아 있는 것,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의 조화와 섭리를 자유로운 생각을 통해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진한 감동과 생명의 신비를 표현하는 작품활동을 통해 살아 있는 생명이 작품 공간 속에서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표현해 낸다. 작품의 영감은 산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자리 잡은 작업실에서 무수한 별과 바람소리 등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얻고 있다. 김 작가는 “자연을 닮고자 감정리 연산골로 이사 온 지도 8년, 작은 개울 둑을 걸으며 삶을 관조하고 자연을 보고 느끼고 진한 감동을 화면에 담는다”며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어떤 환경도 불평하지 않으며 항상 낮은 모습으로 흐르는 물과 같은 삶은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업 작가라면 작업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그의 꿈은 후배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활동을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작가들은 본인의 정체성, 자기 세계를 구축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작가 자신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매일 또 매시간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어 “선의의 경쟁은 발전의 발판이 되지만 이기려고만 하는 욕심은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며 “산을 올라가면서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에 도취되는 그 상황에 빠질 것이 아니라 숲과 바람, 아름다운 들풀을 느끼고 만지며 성찰하고 즐기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작가의 태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과 예술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강원도지회장과 강원아트페어 조직위원장, 강원미술대전 조직위원장, 한국미술협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1997년부터 현재까지 개인전 및 부스전 23회, 단체전 350회 진행해 왔다. 또 춘천예술상 대상 수상, 제23회 강원미술상 본상 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2회 입상 등 10여 개의 대회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 DMZ박물관과 일본 히로시마 청소년문화센터 등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 작가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은유를 서사시처럼 표현하며 자연과 인간의 화음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눈앞에 보이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삶의 일 순위는 작업이고 준비되지 않은 전시회와 작품의 의도와 맞지 않는 전시회라면 미련 없이 거절할 수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이어 “그림은 상처를 받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어려운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진호기자 knu10@kw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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