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손자의 고집이 102세 할머니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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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전신마취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고 무사히 회복한 안 할머니.

넘어지면서 중상 수술 후 못 깨어날 수도… 가족도 자포자기

“아버지가 같은 상황일 때 우리가 포기하면요?” 큰손자가 설득

동해동인병원서 기적의 국내 최고령 전신마취 수술 대성공

이달 초 102세의 안 할머니(102·동해시 동호동)는 평소처럼 교회에 가기 위해 혼자 집을 나섰다. 안 할머니는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점된 지 불과 3년 뒤 태어나 평생을 이름도 없이 살았지만 워낙 정정해 주변에서는 '안 여사님'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날 교회를 가던 중 넘어지면서 넓적다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동해동인병원으로 실려왔다. 거동조차 할 수 없게 된 할머니는 폐 등 장기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졌고 의사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등 전에 없던 치매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극심한 통증으로 신음했지만, 워낙 고령이라 전신마취가 이루어지는 수술의 경우 마취 후 영영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조차 '이대로 돌아가실 것 같다'며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안 할머니의 큰손자가 나서 의료진과 가족들을 강하게 설득했다. 가족회의 중 손자가 '아버지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그랬듯이 똑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이 효입니까?'라는 말에 가족회의를 통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의료진도 가족의 뜻이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다면서 힘든 결정을 내렸다. 이후 동해동인병원 권영석 정형외과장과 유종명 3내과장, 김성년 마취통증의학과장은 협진팀을 꾸려 수술 준비에 착수했다.

할머니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지난 6일 병원 의료진은 초비상 상태에서 수술에 돌입했다. 협진팀은 1시간20분 동안 신속히 인공관절 치환술을 마쳤고 할머니는 수술이 끝난 지 정확히 35분 만에 다시 눈을 떴다. 할머니는 이후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회진 시간 주치의인 권영석 과장의 손을 잡으며 '전혀 안 아프니 괜찮으냐고 묻지 말라', '너무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후속치료 때문에 당분간 퇴원은 어렵지만 병원은 27일 안 할머니와 가족, 의료진과 함께 조촐히 수술 성공을 기념하는 잔치를 열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에 따르면 안 할머니는 2011년 서울에서 대장암수술을 받은 102세의 할머니와 함께 국내에서 전신마취를 견딘 최고령 환자로 알려지고 있다. 권 과장은 “큰 부담이었지만 수술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결국 가족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면서 “특히 손자분의 한 마디가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최기영기자 answer07@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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