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인생 2막, 새 삶을 산다]여성속옷으로 연구 시작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특허출원하자 삶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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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 방한마스크 만드는 경찰관 출신 이병준 대표

◇경찰 공무원 퇴직 후 고향인 양구에서 직접 개발한 방한 마스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준(60)씨가 마스크 샘플을 시험하고 있다(사진 위쪽), (주)PNL은 다문화가정 주부들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지역 경제활성화에 이바지 하고 있다(사진 아래 왼쪽). 이병준(60·오른쪽)씨와 친구 박장근씨가 공장에서 생산된 마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양구=박승선기자

고교시절 불량한 친구와 어울려

멘토 임경순 전 양구군수 만나

방황 접고 새출발 경찰에 입문

꽁꽁언 마스크쓴 군인들보고

김서림 방지 방한 제품 개발

공직생활 마친후 양구서 창업

다문화 일자리 제공에도 앞장

양구군 양구읍 하리 농공단지에 자리 잡고 있는 (주)PNL 공장에 들어서자 재봉틀 작업을 하는 직원들의 손놀림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 회사 직원인 베트남, 필리핀 출신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재봉틀을 이용해 방한 마스크를 제작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이병준(60) 대표가 완제품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방한 마스크 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이 대표는 1년 전만 해도 양구경찰서 상리파출소장으로 재직하는 경찰관이었다. 상리파출소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후 자신의 아이디어로 특허 출원한 '펀치볼 방한 마스크'를 생산 판매하는 사업가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인천에서 가구 제작업체인 (주)선진기업을 운영하던 친구 박장근(60)씨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주)PNL을 설립하고 박씨와 함께 공동 대표를 맡은 이 대표는 요즘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사업가로는 이제 걸음마를 뗀 셈이지만 특허 제품인 펀치볼 방한 마스크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바탕으로 서울 등 수도권과 양구를 오가며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는 이 대표의 얼굴에는 새로운 일에 대한 확신과 즐거움이 넘쳐났다.

■청소년기의 방황, 그리고 경찰로 평생을 살다=춘천기계공고 1학년 때 레슬링을 그만두고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한동안 방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찰서를 들락거렸는데 사회인과 불량 청소년 간 결연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멘토-멘티 결연인데 당시 도청에 근무하던 고(故) 임경순 전 양구군수가 이 대표의 멘토였다. 임 전 군수는 때로는 엄하게 꾸중하고 때로는 격려하면서 이 대표의 가슴에 사랑을 심어줬다. 임 전 군수 덕분에 더 이상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고 회고하는 이 대표는 1999년 양구경찰서 경무과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임 전 군수를 다시 만났고, 훗날 퇴직하면 양구에 살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고 한다.

방황을 접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대표는 부산에서 냉동사 자격증을 취득해 2년여 동안 원양어선을 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목돈을 벌기도 했지만 원양어선을 탈 때마다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1979년 경찰에 입문하게 됐다. 서울시경에서 교통사고 조사 업무를 주로 맡아서 하다 1999년부터 퇴직할 때까지 양구, 인제, 홍천 등 강원도에서 근무했다.

■펀치볼 방한 마스크 특허 출원하다=2012년 말 상리파출소장으로 근무하던 이 대표는 우연히 펀치볼이 내려다보이는 육군 21사단 도솔대대에 면회객을 안내하게 됐다고 한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강추위 속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이 입김으로 인해 마스크가 얼어붙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그날부터 김이 서리지 않는 방한 마스크 제작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퇴근만 하면 김서림 방지 방한 마스크 제작을 위한 연구를 이어갔다. 여성용 브래지어를 이용해 연구를 거듭했는데 파출소장이 브래지어를 계속 사가자 한동안 여기저기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표는 수개월의 연구 끝에 안면부와 마스크 사이에 공간을 확보하고 마스크 상단에 와이어를 넣은 제품을 만들어 냈으며 지난해 7월 특허를 출원하게 됐다. 강원일보 보도를 통해 특허 출원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대표는 올해 초 MBC 도전 발명왕 녹화에 참여했고 이날 참가한 4개 팀 가운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 이병준 대표는 죽마고우인 박장근 대표의 도움으로 1억원가량을 들여 시제품을 제작해 양구지역 군부대와 경찰서, 독도경비대 등에 배포했고 이 제품을 사용해 본 군장병과 의경들 사이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입김으로 인해 마스크가 젖거나 얼어붙는 일이 없고 옆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것은 물론 음료수를 마시거나 흡연을 할 때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돼 편리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펀치볼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로 인해 영감을 얻어 제품을 만든데다 제품 모양이 펀치볼 지형과 닮아 이름을 펀치볼 방한 마스크로 붙였다.

■양구에서 기업의 성공 신화 쓰겠다=군장병들이 실제 사용해 보니 편리하고 좋다는 반응을 보이자 자신감을 얻은 이병준 대표와 박장근 대표는 (주)PNL을 설립하고 올겨울 들어서면서부터 펀치볼 방한 마스크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요즘 이 대표는 박 대표와 함께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판매망을 넓히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고 있다. 최근 서울 한강사업소가 400개를 구입해 도로 보수원들이 착용하도록 했으며 입소문이 퍼지면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대에 1,000개, 대림종합건설에 500개를 납품하는 등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겨울철 근무와 훈련에 나서는 군장병과 경찰뿐만 아니라 스키장을 찾는 스키와 스노보드 마니아들, 골프 마니아들에게도 아주 좋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수요가 많지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유사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시장에 유통되고 있어 어떻게 효율적으로 경쟁해 나가느냐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세계 각국의 선수들에게 나라별 국기 문양이 새겨진 마스크를 판매해 보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그려가는 등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구상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이 대표와 박 대표에게는 회사를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이자 소박한 꿈이 또 하나 있다. 현재 공장 직원 7명이 모두 결혼이주여성으로 구성돼 있는데 회사를 성장시켜 보다 많은 결혼이주여성을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양구지역 결혼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병준 대표는 “펀치볼 방한 마스크의 특허 출원으로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사업이 새로운 삶의 성공 드라마를 써가는 첫 페이지가 됐다”며 “추위에 떠는 장병들이 제품의 모티브가 된 만큼 맹추위가 이어지는 겨울에도 야외에서 일하는 모든 분과 겨울스포츠 마니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양구=심은석기자 hsilv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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