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총선
총선
총선

사회일반

[인생 2막, 새 삶을 산다]“매일 1.5㎞씩 업어서 등교 시켜준 마을어른들 은혜 갚아야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퇴임후 고향 아이들 지도 이창규 강원대 명예교수

◇이창규 명예교수는 지혜탐구창고에서 유치원부터 초교 고학년까지 실험을 할 수 있는 기구는 물론 키가 다른 아이들이 편하게 공부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높이의 실험테이블을 제작했다(사진 위쪽), 원주 부론면 출신의 이창규 명예교수는 현재 자신의 고향에 내려와 지혜탐구창고를 운영하면서 지역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원주=오윤석기자

다리장애로 학교 못가자 주민들 나서

힘들때 마다 그 따뜻함 생각하며 버텨

교수가 된 후에는 고향후배 견학 팔걷어

원주 부론면에 과학교실·도서관 개설

지역 초교·유치원생에 과학·영어 지도

기초 중시하는 체계적 학습 방법 소문

타지역서도 주말반 강의 요청 줄이어

지난해 6월 초등학생이 50여명에 불과한 원주 부론면에 한 무료 과학교실과 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창규(67) 강원대 명예교수가 자신의 집 안에 꾸민 '지혜탐구창고'와 '지혜탐구사랑방'.

50㎡ 남짓한 지혜탐구창고에는 각종 전문 과학실험 기자재와 학습도구가 가득하고 바로 옆 지혜탐구사랑방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부터 어른들을 위한 소설까지 도서 2,000여 권이 빼곡히 차 있다.

학원은커녕 공부할 공간조차 없던 농촌지역, 전직 대학교수가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지혜탐구창고와 사랑방은 부론지역 학생들에게 보물 같은 장소이다.

“농촌은 도시보다 다양한 학습의 기회를 접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배움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 집에서 퇴직 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이 교수가 평생 꿈꿔오던 일이었다. 2012년 8월 강원대 화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이 교수는 부론면으로 돌아와 한옥 고향 집을 동네 아이들의 배움터로 꾸미기 시작했다.

그가 태어난 방은 작은도서관으로 탈바꿈했고 대문 옆 앞마당에는 과학교실로 사용될 건물이 들어섰다.

150년 된 측백나무를 중심으로 각종 과실나무들을 심은 뒷마당은 동네 아이들을 위한 영어 자연학습공간으로 변신했다. 이곳에서 이 교수는 강원대에서 강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부론지역의 초교생과 유치원생들에게 과학과 영어, 독서, 글짓기 등을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에서 이제는 미래의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의 꿈이 자라고 있는 것. 이 교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이웃들의 도움으로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고 받은 사랑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뿐”이라고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어릴 때 다쳐 오른쪽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까지, 그는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배우지 못하면 장애를 원망하지 않고 농사나 지으며 살 거라면서 아버지는 공부를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가 안타까웠는지 마을 어른들이 매일 업고 1.5㎞가 넘는 거리를 등하교를 시켜줬지요. 등에서 전해지던 그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빨리 고향에 돌아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버텼습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사실 그의 후배 사랑은 유명하다.

2002년부터 정년퇴임할 때까지 11년 동안 꾸준히 모교인 부론초와 인근 소규모 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1박2일 춘천 나들이'를 진행, 강원일보사와 강원대, 도청, 국립춘천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원주교육지원청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정년퇴임을 하니 더 이상 모교 아이들에게 현장체험학습 기회를 제공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과 이공계에 관심을 갖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다 시작한 게 과학교실”이라고 했다.

지혜탐구창고와 사랑방에서 중점적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과목은 이 교수의 전문분야인 과학이다. '물질의 형태와 성질, 수치개념' '액체와 기체' '물질의 변화' 등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순수과학 분야이지만 모든 수업은 쉽고 재미있게 진행된다. 아이들은 실생활과 연계한 각종 실험을 하고 과학노트를 작성하며 과학에 대한 친밀감과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이 교수는 아이들에게 과학적 수치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 유학 및 교환교수 시절 외국인들의 정확한 수치개념에 놀랐습니다. 일상에서도 '올해는 너무 가물다'가 아니라 '올해 내린 비는 몇 인치로 예년보다 몇% 적게 왔다'는 식으로 대화를 하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정량·수치화에 익숙하도록 교육을 받은 결과였습니다”고 이야기했다.

4~5시간은 꼬박 교재 제작과 자료조사에 매달리는 등 이 교수가 한 번의 수업을 하기 위해 들이는 정성은 각별하다.

체계적이고 기초를 중요시하는 그의 수업방식은 현직 교사와 이공계 대학생들도 감탄할 정도. 지난달 이 교수의 집을 찾았던 과학교사로 재직 중인 제자들은 '방학기간만이라도 자녀들을 맡아 지도해달라'며 부탁하고 있고, 춘천에서도 '주말반을 개설해달라'는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그는 내년부터 지혜탐구창고와 사랑방을 확대·운영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과학교실을 은퇴한 노교수의 소일거리나 급할 때 아이들 맡기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학부모들이 '부론에 이런 곳이 있어 축복'이라고까지 말해줘 오히려 감사합니다”라며 “무엇보다 처음에는 과학을 낯설어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수업시간이면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과학교실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부인의 도움 덕분이라며 “고향집에서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고 웃었다.

원주=김설영기자 snow0@kwnews.co.kr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