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분단 70년, 현장을 가다]다방·술집 북적이던 `동부전선의 라스베이거스' 이젠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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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한때 동부전선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릴만큼 번성했던 천도리의 1960년대 시가지 모습. 1980년대 말까지 휴가·외박 나온 군인들로 불야성을 이뤘었다(사진 위 왼쪽), 군부대 복지시설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휴가·외박을 나온 장병들이 인제와 원통시내 등지로 빠져나가면서 상권 공동화를 겪고 있는 현재의 천도리 모습(사진 위 오른쪽), 1985년 훈련중인 장병들을 응원하는 주민들.

北 내금강으로 가는 최단거리 위치

80년대 말까지 유흥지역으로 번창

軍 복지시설·교통 발달로 상권 쇠락

30년새 주민 수 5,700명 → 3,300명

郡 50억원 투입 테마거리 조성 추진

생태체험·생활공동체·조망권역 개발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는 영서 내륙지역에서 북한 내금강으로 가는 최단거리인 인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치열한 전쟁터였고 지금은 분단의 현장이다.

6·25전쟁을 통해 건설된 도시인 만큼 아픈 상처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병영문화의 중심지=천도리는 '군인을 위한 군인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주민보다 군장병의 수가 3배나 더 많아 지역경제가 군인 중심으로 꾸려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군인들이 소비의 주체로 자리잡고 이들의 필요에 따라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방과 술집이었고 심지어 인제 시내에도 없었던 나이트클럽까지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인제지역의 대표적인 유흥지역이라 외출·외박을 나온 군인들은 물론 타 지역에서까지 천도리를 찾을 정도로 당시에는 '최고 물 좋은 곳'으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 가운데 천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이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수복되기 전 38선 이북지역 공산 치하에 있었던 터라 북한군, 소련군은 물론 국군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었다.

■시간이 멈춰진 회색 도시=지난 16일 찾은 서화면 천도리는 과거 '동부전선의 라스베이거스'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적했다.

군장병들로 북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도심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와 인도에는 주민과 군인들 몇몇이 지나다닐 뿐 황량하기만 했다. 2층 이상 되는 건물은 찾아볼 수 없고 1970~1980년대에 시간이 멈춰진 듯한 거리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뿐이었다.

한때 천도리의 대명사였던 '왕다방', 군인들이 밤새 진을 친 술집 '진고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가지 곳곳에서 눈에 띄는 빛바랜 간판과 방치된 건물들이 천도리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고단한 군생활의 피로를 유흥으로 풀던 시대가 지나고 신세대 장병들로 채워지면서 병영의 도시가 빠르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군부대 복지시설이 확충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휴가와 외박을 나오는 장병들이 인제와 원통 시내, 멀리는 속초로 빠져나가면서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 역시 군장병과 면회객들이 지역에 머물지 않고 깨끗하고 쾌적한 시설과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시설 개선 등 재투자를 하지 못해 상권이 붕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서화지역의 인구는 1980년 5,700여명에서 2010년 3,300여명으로 뚝 떨어지는 등 30년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평화생명도시로 활로 모색=그러나 그동안 침체일로에 있던 천도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분단의 현장이자 평화와 생명의 현장인 서화지역을 재정비해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인제군은 2017년까지 5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천도리 테마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천도리 지역을 생태체험권역, 생활공동체권역, 조망권역 등 3개 권역으로 크게 나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생태체험권역에는 기존 군시설을 활용한 안보체험을 통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안보의식을 감성과 체험으로 고취하기 위한 안보교육 감성체험학습장을 비롯해 자연농촌체험파크, 복사길 농장, 복사꽃 야영장 조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생활공동체권역에는 천도리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특화거리 조성, 조망권역에는 풍치목 둘레길, 비득고개 전망대 등을 설치하는 등 추억의 테마거리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주민들도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추진하는 등 수십 년간 긴 잠에서 깨어나 평화와 생명을 모티브로 제2의 전성기를 맞기 위해 움직이고 있어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인제=권원근기자 stone1@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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