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北 남겨진 딸 위해 5백만원 송금 브로커 수수료만 30% 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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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이·만·갑' 출연 박희순씨의 춘천 정착기

중국서 인신매매 당해 겨우 탈출

군 출신이라 열배 더 조사 받아

지난해 10월 결혼 후 춘천 정착

남편·가족 생각하며 꿈 키워

“북에 두고 온 딸. 이제 초등학교 졸업했겠지. 너무 보고 싶다. 태어나서 어머니라는 말도 못했을 텐데. 손잡고 이 세상 어디든 웃으면서 다니고 싶은데. 언젠간 만나겠지. 만날 날이 꼭 있을 거라고 본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로 잘 알려진 박희순(여·41)씨는 어린이날을 앞둔 3일 강원일보사를 찾은 자리에서 북에 두고 온 딸(13)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북한의 강원도 원산이 고향인 박씨는 2007년 탈북, 중국을 거쳐 2009년 7월 태국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입국했다.

2002년까지 12년간 북한의 공군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남편은 미그21기 전투기를 몰던 조종사. 북한 엘리트 집안이지만 남편이 2003년 추락사하면서 급격히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남편이 숨지고 부대내 관사에 살았는데 남편 상사들이 위로한다며 집을 찾으면서 주위에 이상한 소문이 나 딸과 함께 친정이 있는 원산으로 돌아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먹고살기 위해 박씨는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물건을 파는 속칭 '빵차'로 나섰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던 박씨에게 접근한 브로커의 “박씨 정도면 중국에서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추운 겨울 압록강을 넘어 국경을 통과했던 박씨와 2~3명의 여자들은 브로커들이 준비한 봉고차를 타고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제 돈을 벌겠구나 기대했지만 브로커들이 중국여자로 분장시키더니 중국 내륙으로 이동시킨 뒤 팔아넘겼다. 인신매매 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은 박씨는 군 경험을 통해 일주일 만에 탈출했고 남한행을 선택했다.

희망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려서는 순간 박씨의 꿈은 서서히 깨졌다. “2~3일이면 될 것을 군 출신이라고 20일간 조사를 받으면서 마음을 닫게 됐다”고 회상했다.

2012년부터 원주에 정착한 박씨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열지 못한 마음에 주위와 많이 부딪쳤다. 스스로도 “말투가 차갑고 강해 때론 재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힘들지만 박씨를 지탱한 건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딸. 요즘도 매년 2~3회씩 한 번에 500만원가량을 북의 어머니에게 보낸다. “500만원을 브로커를 통해 전달하는데 수수료 명목으로 30%나 떼인다”며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전달 받은 것을 확인하는데 북한이 왜 돈도 전달하지 못하게 막는지 답답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삶에 힘겨워하던 박씨에게 지금의 남편 신모(53)씨는 구원자다. 2013년 7월 소개로 만난 남편의 지극 정성에 지난해 10월 결혼에 골인하면서 춘천시 남산면에 정착했다. “남편을 만나 모든 것이 변했다. 나에게는 부모이자 형제로 유일하게 의지 할 수 있는 하늘이 준 사람”이라며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신형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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