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하루만 쉬어도 가격폭락 농민 피해 20년째 바다 한번 못데려가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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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없는 가장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춘천 농산물도매시장에서 20년째 장사를 해온 고재국(57·사진 오른쪽)·박영숙(여·54)씨 부부.

매일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여름휴가는 마치 청량음료와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들뜬 피서철,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본다.

(1)과일도매상 고재국씨 부부

“결혼하고 20년이 넘도록 바닷가 한번 못 가봤죠. 바닷가에 부인과 예쁜 집을 짓고 사는 게 꿈입니다”

3일 오전 춘천 농산물도매시장, 고재국(57)·박영숙(여·54)씨 부부는 이곳에서 20년째 과일도매상을 하고 있다. 과일도매상은 쉬는 날이 거의 없다. 하루만 쉬어도 시세의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도매시장이 문을 닫아 다른 지역으로 상품이 과잉공급되면 해당 지역은 값이 폭락해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또 4계절마다 제철과일, 채소가 매일 출하되고 신선할 때 신속히 유통해야 하는 농산물의 특성상 쉴 수가 없다. 결국 이들 부부는 1986년 결혼한 후 여름휴가는 물론 가족여행조차 다녀온 적이 없다.

남편 고씨는 “다 큰 두 딸이 아직 출가 전인데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며 “다른 부인들은 모임도 다니고 친구들과 차도 마실 시간이 있는데 아내는 늘 가게에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이라고는 시장상인들과 당일치기로 다녀온 여행뿐이니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부인 박씨도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경기에 민감하니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면서 “20년 넘도록 가족 모두 모여 여행 갔던 적이 없는데 이젠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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