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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넘어 세계로]“안방서 해낸 평화올림픽…학생들 `하면 된다' 자신감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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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9만8천명 올림픽 참여 이끈 민병희 도교육감

유리문 바깥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춘천시 요선동 골목길 입구에 자리 잡은 작은 식당의 출입문을 연 민병희 교육감은 기다리던 기자에게 반갑다며 바로 악수를 청했다. 안부를 물을 사이도 없이 민 교육감은 “아, 고성 산불이 걱정이에요!”라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감동과 여운을 나누기 위해 민 교육감과 만난 28일 낮. 산불은 거세져만 갔고 민 교육감은 인터뷰가 시작된 낮 12시부터 끝날 때까지 1시간30여분 동안 수시로 수행비서에게 고성지역 산불에 따른 인근 초·중·고교의 대응을 확인했다.

식당 2층 한쪽에 마련된 식사 장소에 오른 민 교육감은 보글보글 끓는 돼지고기가 가득한 김치찌개를 보자 그제서야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날 오전에 열린 도의회 본회의 도정질의로 다소 지쳤는지 식탁 위에 놓인 물 한잔을 크게 들이키며 입맛을 다셨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던 민 교육감에게 슬쩍 올림픽의 감동과 여운을 물었다. 그는 “개회식 때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모두가 일어섰고 함께 박수를 쳤어요. 우리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고 코끝이 찡해지며 전율이 일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감동을 또 느낄 수 있을까요!”

잠시 말을 멈춘 민 교육감은 “2011년 7월7일 남아공 더반에서 개최지가 확정될 때 입으로는 '예스 평창'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강원도가 해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까지 이끌어 냈습니다. 정말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었습니다. 올림픽을 개최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첫 질문의 대답이 끝날 때까지 밥 한술 뜨지 않던 민 교육감에게 바로 식사를 권했다. 오후에도 열리는 도정질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궁금한 점이 많았던 기자는 올림픽 동안 가장 공격의 대상이 됐던 학생 동원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한반도기 입장·단일팀 첫골

세계평화 이룬 감동의 순간

학생봉사자 등 자발적 참여

학생동원은 옛 이야기일뿐

예상대로 그는 수저를 놓고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 동원이라는 이야기를 누가 처음 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학생을 동원합니까. 아마도 과거만 생각해서 그렇게 봤을 거예요. 요즘 동원하면 바로 SNS에 그 내용이 올라가고 학생들이 교육감에게 직접 항의 합니다. 그래서 못 합니다”라며 이내 껄껄 웃었다.

이어 “우선 각 학교에서 먼저 희망자를 받은 뒤에 원하는 학생들만 관람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도내 학생들과 교직원 9만8,213명이 관람했습니다. 학생 자원봉사자와 학생 서포터즈로도 활동했고요. 올림픽은 강원도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올림픽을 우리 지역에서 개최한다는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패럴림픽은 누구든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학생들에게 가장 좋은 현장 경험이 됐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다 비운 민 교육감은 식당 주인이 내놓은 식혜를 한 모금 들이키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과거와 달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문화가 사라졌어요. 그만큼 우리 젊은 세대들이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봅니다. 성화를 점화했던 김연아 선수가 러시아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받으면서도 보였던 의연한 모습이 우리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가 올림픽을 통해 더 완성된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식사 후 인근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 교육감이 미처 소파에 앉기도 전에 남북 단일팀을 현장에서 봤던 감동을 물었다.

지난달 14일 남북 단일팀의 숙명의 한일전을 지켜본 그가 경기 후 기자와 가진 통화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민 교육감은 곧바로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데 단일팀이 일본을 상대로 첫 골을 넣었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단일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단일팀 목표가 1승이 아니라 한 골을 넣자는 것이었는데 제가 현장에서 봤잖아요. 눈물이 나면서 한 팀이 되고 있고 성장한다는 것을 느꼈는데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남북 학생 수학여행 교류 확대

철원·고성 평화교육 거점 구상

유산 활용 위한 전문인력 공급

마이스터과 육성 난관 아쉬움

민 교육감은 갑자기 생각난 듯 “남북 학생 교류에 대한 아이템이 많아요. 단일팀을 보면서 여기에 이념과 사상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라고 운을 뗐다.

이미 도교육청이 발표한 동북아 유소년 축구대회와 한마음합창대회에 북한 학생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또다시 말해 기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민 교육감은 여기에 덧붙여 “제가 욕심 나는 것은 남북 학생들의 수학여행 교류입니다. 관동8경이 남북 강원도에 걸쳐 있어요. 철원과 개성은 후고구려와 고려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구요. 설악산과 금강산을 잇는 관동8경 로드도 있습니다. 고성을 수학여행 교류의 거점으로, 철원 통일교육수련원을 평화 교육원으로 확대 개편해 평화 교육의 거점으로 삼으면 어떨까요?”라며 색다른 시각에서의 학생 교류를 제안했다.

어느덧 시간이 오후 1시10분을 넘겼다. 오후 도의회 본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기자가 더 바빠졌다. 아직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서둘러 올림픽 유산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동계올림픽 시설을 활용하고 유지하려면 전문인력이 필요합니다. 올림픽 기간 외국인 전문가들이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전문인력을 한번 육성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마이스터과입니다.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전문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올림픽 유산으로서 각종 시설에 대해 민 교육감은 “사후 활용을 생각하고 시설을 조성했다면 어땠을까요”라며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고 했다.

도의회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던 민 교육감은 “그래도 평창올림픽은 강원도의 아이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준 평생 잊지 못할 고마운 세계적인 축제였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글=신형철기자·사진=신세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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