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脫강원인 入강원인>(4)신서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경기도는 행정구역상 선일뿐...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경원선의 철도중단역인 신탄리역으로 현재 철원 대마리간의 복원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 동쪽 끝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이 신서면인 이유는 과거 철원의 서쪽 끝에 위치해있던 외서면이 전쟁후 경기도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신서면으로 지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신서면의 경기도 편입은 강원도에 있어서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분단의 현실이 됐다.

1945년 광복직후 38선 이북에 위치해 공산치하에 놓여있다가 6·25전쟁 이후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법에의해 행정권이 수복되면서 민간인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시 신서면과 철원의 대마리사이에 놓여있던 용담초소가 민간의 출입을 제한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시작됐다.

민원문제해결을 위해 철원군청을 찾아가려면 의정부를 거쳐 춘천을 통해야만 하기 때문에 단순민원처리에도 주민들은 하루의 시간을 꼬박 할애해야하는 실정이었다.

결국 1963년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의해 강원도 철원군에서 경기도 연천군으로 편입됐다.

이후 민통선이 북상되어 민간인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도로여건이 좋아지면서 한 때 신서면의 강원도 재편입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정자립도 면이나 행정상 편의가 좋은 경기도로의 행정구역을 바란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 됐다.

이렇듯 경제적, 행정상으로 강원도와는 멀어져버린 모습이지만 이들의 삶과 역사속에는 강원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철원군 외서면이 6·25 겪으면서 연천군으로 편입

철원약초·강원식당 등 많은 간판에는 강원의 흔적

“어차피 떠난게 아니라 이땅과 함께 살아온 삶이야”

■과거

경기도 연천군 중부내륙의 명산인 보개산 자락에 위치한 심원사는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과거 경기도에서 금강산을 찾는 스님과 백성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다.

보개산의 이름도 보물을 덮고있는 뚜껑이라는 의미로 여기서 말하는 보물은 바로 금강산을 의미한다.

일제시대까지는 금강산 유점사의 말사였지만 현재는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이다.

그러나 이 절 역시 일제치하와 6·25전쟁으로 인해 많은 아픔을 겪었다.

광복을 맞이한 심원사는 그 위치가 38도선 이북에 있었기에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결국 6·25전쟁으로 인해 사찰 전체가 소실되게 되고 이후 심원사의 승려였던 김상기 김상수의 주도하에 보개산 인근의 철원군 동송면 상로리로 심원사를 이전해 활동을 지속했다.

이후 한국의 대표적 지장도량의 옛 터전인 심원사를 복구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됐다.

결국 2002년 군부대와의 합의로 사지복원허가를 받고 현재 철원에 소재한 심원사대신 원심원사로 명칭을 개칭해 세민 주지스님하에 다시금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현재

신서면 시내로 들어서면서 강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많은 간판들을 볼 수 있다.

철원약초, 강원식당 등 여행자들로 하여금 아직 강원도를 벗어나지 못했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정도다.

도신 5리 노인회관을 찾았다.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깊은 세월과 과거의 아픔들이 얼굴 곳곳에 깊이 패여져 있는 어르신들의 본적은 강원도 철원군 그러나 현재 주소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이다.

그러나 살아온 집과 마을, 어울리는 친구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노인회장 김석찬씨는 이러하듯 마을에 남아있는 강원의 흔적에 대해 “행정구역은 바뀌었으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신서면 주민들의 일부가 철원군 대마리의 농터에서 농사를 짓고 반대로 철원군의 농민들 역시 신서면 일대에서 많은 수가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어디로 떠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이 땅과 함께 살아온 삶이기에 강원도를 추억하거나 할 만한 기억 같은 것은 없지만 여전히 강원도와 빈번한 교류로 인해 행정구역을 나누는 지도상의 선과 관계없이 기존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신서면의 신탄리역에는 서울을 향하는 철원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신서면을 찾고 있다.

경기도의 신서면과 철원군민들의 삶이 하루하루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

기차가 멈춰서는 곳 더 이상 나가지 않는 역 경원선의 철도 중단역인 신탄리역이 최근 경원선 복구공사로 다시금 활력을 찾고 있다.

경원선은 일제시대 러·일전쟁당시 군사목적상 필요성을 느낀 일본군이 용산과 원산을 잇는 철도를 개설했다.

현재는 남북분단의 현실로 서울 용산∼연천군 신탄리를 운행하고 있으며 북측은 원산∼평강간 전철을 운행중에 있다.

지금은 미래의 통일시대를 대비해 경원선의 연결이 가능 하도록 하기위한 신탄리∼철원 대마리까지의 철도복구 노반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철원지역의 개발촉진과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따라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장래 남북관계 개선시 여객 및 화물수송이 러시아 까지 이어지는 TSR(시베리아횡단철도)등과 운행 가능토록해 국제철도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또한 금강산 역까지 철도가 연결 될 경우 안보관광상품로서의 효과도 톡톡히 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현재 민통선내의 작업이 많아 군부대와의 협의와 지뢰제거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올해 3월 군부대와의 1차 협의 이후 2차 3차 협의를 거치면서 원활히 진행되고, 지뢰제거작업역시 군부대의 협조를 받아 공단과 육군5사단의 협력아래 안전과 내실이 뒷받침되는 공사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통일 후 철원지역과 함께 한반도의 중심이 될 신탄리역 역시 경원선이 뻗어나가는 모습속에서 강원도와 함께 미래 한반도의 중심으로서 중요한 거점이 될 꿈을 함께 키워가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 그리고 그 안에서 지역색과 경제적 이권으로 인해 지역간의 또 다른 분열이 이뤄져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속에서 신탄리와 강원도 철원이 함께 가꿔가는 꿈은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행정도상의 선일뿐 아무런 벽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터전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통해 화합된 강원도민 또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글·사진=박승선기자 lyano@kw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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