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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오솔길]연리지

임정화 2015강원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결이 고르지 않은 포석들이 노부부의 발걸음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할머니는 거친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앞만 보고 간다. 관절염이 심한지 걸음이 마냥 무겁고 처진다. 뒤에 바짝 붙은 할아버지는 작고 퉁퉁한 할머니와 달리 껑충한 키에 장대처럼 말라, 마치 할머니 혼자 힘겹게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이고 가는 모양새다.

할아버지의 손에서 검정 비닐봉지가 느릿느릿 건들거린다. “조심해서 가. 넘어질라….” 몇 번씩 당부하지만 할머니는 들은 체도 않는다. 묘한 의혹이 인다. 어쩌면 젊어 속깨나 썩이던 할아버지가 혼자 남게 될까 조바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못 해도 사오십 해 넘도록 어찌 좋기만 했으려고. 둘이어서 더 외롭고 신산했을 삶들이 눈앞에 선연하다. 뒤꼭지만 봐도 밉고, 말마다 서럽고 분했던 세월이 오죽했을까. 하여 무슨 사랑이나 따스함 따위가 남아 같이 산 것 아니요,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채어 하는 수 없이 살아온 긴긴 날들을 누구에게 탄할 것인가.

불은 무섭게 타다가도 꺼지고 고인 물에서는 비린내가 풍기게 마련. 삶의 황혼녘에야 비로소 무서운 건 情이구나, 미운 情(정)이로구나, 깨닫고 마는데. 아무려나 여전히 뿌리 따로, 가지 따로이되 딴딴하게 이어 박힌 그놈에 情 때문에,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따로 또 한몸'이 되어 버린 질곡의 생.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가 무연한 노부부에게 괜스레 내 삶의 원망과 서러움을 덧씌우고 만 것인지도. 쓸데없는 혐의를 모두 벗겨드린 뒤 나는 저만치 멀어지는 늙은 부부의 길을 헛헛한 웃음으로 쓸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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