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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본 세상-뉴스&트렌드]손주 키우는 것도 힘든데 이젠 지갑까지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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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세대 겨냥 `피딩족' 마케팅

유통업계서 피딩족 용어 만들어

'손주의 날' 기획 아동용픔 장사

어르신들 육아에 경제부담까지

춘천에 거주하는 김모(여·58)씨. 몇 해 전 결혼해 아이를 낳고 복직한 큰딸을 위해 손녀 육아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이 맡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생각에 스스로 아이 돌보기를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간다. 딸 부부가 매달 건네주는 용돈은 고스란히 손녀 간식비와 장난감 구입비로 들어가고, 오히려 내 지갑 여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돈이나 대주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피딩족' 보도에 왠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김씨는 “손녀 재롱 보는 재미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막상 육아를 시작하니 예전과 다르게 힘이 부치는 건 사실”이라며 “육아도 힘든데, 거기다 원하는건 뭐든지 해주는 슈퍼 할머니가 되라는 소리로 들려 씁쓸하다”고 말했다.

■'피딩족' 모이 주는 사람들?=김씨를 허탈하게 만든 '피딩족'은 시쳇말로 족보(?)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단어다.

수유·먹이 주기를 의미하는 영어 '피딩 (FEEDING)'과 한자 '족(族)'이 뒤섞인 그야말로 해괴한 합성어다. 뜻풀이도 황당하다. 경제적(Financial)으로 여유가 있고 육아를 즐기며(Enjoy) 활동적(Energetic)이면서 헌신적(Devoted)인 50~70대 할아버지·할머니를 의미한다고 한다.

조부모들이 육아를 즐긴다는 말에도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육아를 하면서 과연 활동적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억지 춘향으로 말을 만들다 보니 상충되는 의미들이 뒤섞여 버렸다.

아무튼 손자·손녀를 위해서 고가의 제품도 부담 없이 사줄 수 있는 소비력이 높은 연령층을 말한다고 하니, 의도가 엿보여 뒷맛이 개운치만은 않다.

■'손주의 날'에서 시작된 말=그렇다면 이 말은 어디에서 처음 시작됐을까? '피딩족'은 몇 년 전 국내의 한 유명 백화점이 '손주의 날'을 기획하면서 언론을 통해 퍼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노인 세대의 무시 못 할 구매력이 한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 이 백화점의 아동·유아용품 코너에서 지난해 50~70대의 구매금액(37만원)이 30대(23만원)를 60%나 앞질렀다고 하니 노인 세대가 중요한 고객으로 떠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한 업체의 마케팅용 단어가 마치 '사회현상'처럼 비친다는 데 있다. 그나마 아직은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올해 들어 설과 초등학교 입학식을 즈음해 피딩족이라는 말이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면서, 능력에 재력까지 겸비한 노처녀를 이르는 '골드미스'가 일상용어로 쓰이는 것처럼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피딩족에 황혼 육아 … 아이러니=경제력있고 손주 돌보기를 즐기는 조부모를 '피딩족'이라고 이름짓고 호들갑을 떠는 사이,'황혼 육아'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통계청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 가정 510만 가구 중 절반(250만 가구)은 조부모가 육아를 맡고 있고, 같은해 보건복지부의 전국 보육실태조사 결과에서는 맞벌이 부부 중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아이는 50.5%, 워킹맘이 아닌 경우도 10.1%가 조부모와 함께 육아를 하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비중이 높고 '손주병'이라는 신조어가 생길정도로 황혼 육아가 힘든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까지 지우는 '피딩족'의 등장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승환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마케팅 용도로 만들어진 '피딩족'이라는 말이 마치 노인 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이미지로 부각되며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언론에서도 사회적으로 동의나 검증되지 않은 단어를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피딩족의 정의를 육아에서 자유롭고(Free) 자신의 삶을 즐기며(Enjoy) 활동적(Energetic)이면서, 자신의 일에 전념하는(Dedicated) 실버세대로 바꿔보면 어떨까.

오석기기자 sg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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