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마음의 창]몇가닥 새치에 흔들렸다면

신정호 샘밭본당 주임신부

신정호 샘밭본당 주임신부

몇 달 전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옆머리에 새치 하나가 비쭉 튀어나와 있었다. '새치 하나 정도야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그것을 뽑고, 네잎 클로버라도 찾듯이 자세히 살펴보니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갑자기 열 개가 넘게 보이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치의 원인이 영양 부족이나 스트레스라고 하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이렇게 시작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괜히 속도 조금 안 좋은 것 같고, 멀쩡한 몸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거울 앞에서 괜한 고민에 빠져 머리만 살펴보던 중 새치가 아닌 풍성한 검은 머리가 보였다. 그 순간 내 걱정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무수히 많은 검은 머리가 있는데, 겨우 몇 가닥의 새치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인 듯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편안해져 새치들을 뽑지 않고 다시 제자리에 얌전히 넣어(?) 두었다.

잠자리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 내 모습이 이와 같아 보였다. 좋은 일, 행복한 일들이 늘 일어나고 있는데 정작 그것은 바라보지도 않고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온 정신을 쏟으며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몇 가닥 새치에 마음이 흔들리는 태도는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주님께서 거저 주신 수많은 은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고 불평하며 삶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실망하고는 했다.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이었을까? 이제는 마음을 달리해 나에게 주어진 은총을,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너무도 특별한 그것을, 민감히 알아채고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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