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동화]멍도둑

동화 하지연

◇그림=조남원기자 cnwon@kwnews.co.kr

텅빈 버스가 덜컹거렸다. 나는 엉덩이에 힘을 주고 앉았다. 버스 앞 전자시계가 눈에 띄었다. 오후 5시 28분. 집까진 아직 20분 더 남았다. 엄마한테 5시 반까진 들어간다고 했는데, 벌써 늦었다. 나는 잠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엄마였다.

'유소운. 비도 오는데 위험하니까 빨리 들어와.'

“가고 있어.”

나는 짧은 답장을 보낸 뒤,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손으로 어깨를 주물렀다. 노래방에서 너무 열심히 뛰놀았나 보다. 온몸이 쑤셨다.

오늘 낮, 학교에서 중간고사 점수가 나왔다. 늘 그렇듯 결과는 형편없었다. 시험지 가득 빨간 비가 퍼부었다. 내 시험지는 1년 내내 장마철이다. 비가 안 오는 날이 없다.

“헐, 나 진짜 바본가? 어떻게 만날 점수가 이 모양이지? 이씨…… 야! 기분도 꿀꿀한데 나랑 오늘 놀 사람!”

시험지를 가방에 대충 구겨 넣으며 내가 소리쳤다. 오학년이 된 뒤, 나는 성적이 나오면 그날 하루 친구들이랑 실컷 논다. 미친 듯이 놀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울한 게 아예 사라지진 않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다. 오늘도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갔었다. 놀다 보니 집 가는 건 좀 늦어졌지만 말이다.

나는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렸다. 내 시험지처럼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천천히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뭐야. 놀고 왔는데 또 울적하게……”

그때였다. 똑똑똑. 버스가 빨간 불에 걸린 틈을 타 누군가 앞문을 두드렸다.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타려 하다니, 위험했다. 아무리 차가 멈췄대도 언제 신호가 바뀔지 몰랐다. 나는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 간 큰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기가 센 아줌마일까? 아님 덩치 큰 아저씨?'

그러나 기둥에 가려 잘 안 보였다. 기사 아저씨가 재빨리 문을 열었다. 차라리 빨리 태우는 게 덜 위험하다고 여겼나 보다.

“야 이 녀석아! 위험하잖아! 신호라도 바뀌면 어쩌려고!”

“죄송해요.”

후드를 뒤집어쓴 까만 머리통이 보였다. 후드 사이로 짧은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내 예상이 빗나갔다. 계단을 오른 건 아줌마도, 아저씨도 아니었다. 어떤 여자애였다. 실낱같은 목소리와 작은 몸집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엔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였다.

동전 몇 개가 잘그락거리며 요금 통 안으로 떨어졌다. 까만 후드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우산을 털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젖은 우산을 타고 흐른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으로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헉!”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머리가 멍해졌다. 그 애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애 얼굴엔 알록달록한 색깔의 멍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이마 구석엔 보라색, 눈 옆엔 파란색, 광대엔 노란색과 연두색, 입술엔 빨간색…… 꼭 얼굴 이곳저곳에 물감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그 애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러자 살 위로 주렁주렁 달린 멍들이 꿈틀거렸다. 그 애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녕? 난 멍 도둑이야. 멍을 훔치는 도둑이지!”

“멍을 훔친다고?”

내가 물었다. 또 한 번 머리가 멍했다. 멍 도둑은 팔짱을 끼며 거만하게 답했다.

“그래. 멍이란 멍은 모두 훔칠 수 있어. 몸에 든 멍, 마음에 든 멍 상관없이 말이야. 내 얼굴에 있는 멍 보이지? 이거 원래 내 거 아냐. 다른 사람들한테서 뺏어 온 거지!”

“거짓말.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해?”

내가 말했다. 멍 도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난 아주 특별하거든. 누군가의 멍을 뺏는 건 나만 가진 능력이야! 그래서 멍 도둑도 된 거고. 내가 맘만 먹으면 여기서 네 멍도 뺏을 수 있어.”

멍 도둑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단순한 허풍이라기엔 굉장히 자신만만했다.

“나, 난 몸에 멍이 없는데.”

몸이 움찔거렸다. 멍 도둑이 눈알을 굴려 내 몸을 훑었다. 다 훑은 다음엔 뭔가 생각하더니, 픽하고 비웃었다. 멍 도둑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음, 확실히 겉으론 안 보이네. 어찌 보면 당연해. 껍질이 아닌 알맹이에 멍이 들었는데, 눈으로 보일 리가 없지.”

“뭐?”

“몸이 아닌 네 마음에 멍이 들었단 뜻이야.”

“내 마음에 멍이 들었다고? 넌 그게 보여?”

“물론! 난 특별하니까. 너 최근에 우울한 일 있었지? 뭐, 당연한 얘기지만 멍은 상처야. 다시 말해 멍이 들었다는 건 이전에 상처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단 말이지.”

“상처받은 일?”

“너도 분명 있었을걸. 사람 마음에 멍이 드는 건 사실 흔한 일이거든. 눈으로 안 보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문득 가방 속 구겨진 시험지가 떠올랐다. 성적이 나쁜 건 나한테 익숙한 일이다. 나는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일이라고 기분이 안 나쁜 건 아니다. 빨간 빗줄기는 내 점수를 깎는다. 나는 가끔 그 비가 나를 깎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분 나쁜 생각이라 금방 지워버렸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마음에 멍이 든 건가?'

나는 멍 도둑을 슬쩍 흘겨봤다. 내 속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신기했다. 멍 도둑은 말하는 게 어른 같았다. 초능력자 같기도 했다. 겉모습은 초등학생이면서 내뱉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멍 도둑의 말에는 신비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네 멍이 사라졌으면 좋겠니? 그럼 내가 훔쳐 주고.”

멍 도둑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가 되물었다.

“어떻게 훔치는데? 훔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긴! 네 멍이 나한테 오는 거지! 내가 네 상처를 가져가니까 넌 상처가 낫는 거야.”

“그럼 네가 대신 아프잖아. 그 얼굴 멍처럼……”

내가 손가락으로 멍 도둑의 얼굴을 가리켰다. 아파 보여서 조심스러웠다. 멍 도둑이 내 손가락을 쳐다봤다. 말없이 보기만 했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멍 도둑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한 손으론 자신의 멍든 볼을 살포시 감쌌다.

“다른 사람의 멍은 나한테 오면 해가 되지 않아. 오히려 힘이 되지……”

“힘이 된다고?”

“그래. 말로는 훔친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거래에 가까워. 멍을 뺏긴 사람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아서 좋고, 멍을 뺏은 나는 새로운 힘을 얻어서 좋거든. 네 마음의 멍을 가져오면 내 얼굴엔 또 다른 멍이 생길 거야. 아프진 않아. 이것들처럼.”

“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힘이 뭘 말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멍을 훔치는 특별한 힘이겠거니 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멍 도둑은 내가 원하면 멍을 훔쳐 준다고 했다. 공짜로 내 마음의 상처를 없애준다니, 솔깃했다.

“좋아! 내 멍도 훔쳐 줘!”

내가 소리쳤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우릴 힐끔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멍 도둑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입꼬리가 위로 솟구치면서 볼에 있는 멍들이 찌그러졌다. 처음 봤을 때처럼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점점 멍에 빠져드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터널이었다. 어둠 속 차가운 손가락이 내 광대에 닿았다. 멍 도둑이었다. 멍 도둑이 내 광대뼈를 세게 눌렀다. 아팠다.

“아!”

“아프지?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플 때가 있어. 지금 너처럼! 멍은 어둠을 좋아해. 그러니 주위가 깜깜해진 지금이 기회야. 자, 네 멍을 털어놔 봐! 멍이 입 밖으로 빠져나온 틈을 타서 내가 그걸 빼앗을 테니까!”

“어, 어? 머, 멍을 어떻게……”

“어휴! 어서 네 상처를 말하라고, 이 답답아!”

“그게, 그, 그러니까……”

당황스러웠다. 다짜고짜 빨리 말하라고 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 학교에서 중간지가! 아니, 중간지가 아니고! 오늘 시험이 학교에 왔는데! 아니, 아니 시험이 온 게 아니라!”

입이 얼어붙은 모양이다. 얼음조각처럼 짤막한 말만 튀어나왔다. 그마저도 뒤죽박죽이었다. 내가 허둥대는 사이 다시 주변이 밝아졌다. 멍 도둑이 말한 기회가 지나간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온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멈췄다. 멍 도둑이 손가락을 치웠다.

“그거 하나 제대로 말 못하니? 바보 같긴.”

멍 도둑이 짜증을 냈다. 그러자 나도 덩달아 짜증이 났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싶었다.

“아니, 예고도 없이 그런 걸 말하라니까…”

“됐고, 다음엔 잘 할 수 있지?”

멍 도둑이 내 말을 싹둑 잘랐다. 좀 기분 나빴다. 원래 이렇게 제멋대로인지 궁금했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멍 도둑은 못 본 척 앞쪽으로 고갤 돌렸다. 그리곤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놀란 내가 따라 고갤 돌렸다.

그곳엔 새로운 손님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허리가 새우처럼 굽은 할머니였다. 긴 우산을 지팡이 삼아 할머니가 천천히 걸어왔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렸다.

“아고, 허리야……”

할머니는 우리보다 두 자리 앞에 앉았다. 거기까진 평범했다. 이상한 건 다음이었다. 할머니가 뒤를 돌더니, 우리 둘을 번갈아봤다. 특히 멍 도둑을 관찰하듯이 뚫어져라 봤다. 멍 도둑이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했나 보다. 그걸 본 할머니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왜 그래?”

내가 멍 도둑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멍 도둑은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의 뒤통수만 매섭게 노려봤다. 버스 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들리는 빗소리마저 무거웠다.

“미안한데, 나 이제 가봐야겠다.”

멍 도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어? 멍도 안 훔쳤는데 간다고?”

나는 멍 도둑이 농담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멍 도둑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벨을 누르고 우산을 챙겨 들었다. 후드도 더 깊게 눌러썼다.

“사정이 생겼거든. 멍은 다음에 보게 되면 훔쳐 줄게. 그럼 안녕.”

“야, 야! 잠깐만!”

멍 도둑은 그대로 사라졌다. 내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 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였다.

“아가. 방금 내린 고것이랑 친구냐?”

“네? 아, 아뇨. 친구는 아닌데……”

“아까 고것이 뭐라 혔든 신경 쓰지 말어. 다 거짓말인께.”

몸을 내 쪽으로 반쯤 돌린 채 할머니가 말했다. 멍 도둑을 아는 눈치였다.

“어르신이 아는 애예요?”

낯선 목소리가 또 끼어들었다. 기사 아저씨였다. 언제부터 우리 대화를 들은 건지 살짝 신경 쓰였다. 할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숨을 내뱉었다. 할머니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 동네 사는 아여. 비만 오면 저맨치로 싸돌아 댕기다 나랑 몇 번이고 마주쳤지, 암! 동네서 알 만한 인간은 다 알지. 고것 얼굴에 숭도 지 애비가 술 처먹고 두들겨 패서 생긴 거거든.”

“얼굴에 흉이 있어요?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 아니, 애 엄마는요? 애가 맞는 걸 보고만 있대요?”

“고 여편네야 지 핏덩이 버려두고 뜬 지가 언젠데.”

“허이고…… 말세네, 말세야…… 근데 동네 분들은 애가 저 지경인 걸 보고도 신고 한 명 안 합디까?”

“그래도 저 집안일인디 신고는…… 알아서들 해결하겄지……”

“어쨌든 신고는 하셔야죠. 애가 저런데.”

“나선 대두 애비란 놈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디, 해코지라도 허면 우리 같은 늙은이가 어디 당해낼 힘이 있다구……”

기사 아저씨가 작게 욕을 내뱉었다. 나는 두 어른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가슴에 대고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손도 떨렸다. 기사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난 저 애랑 둘이 친구인 줄 알았더니. 진작 알았다면 신고라도 했을 텐데…… 아, 걔가 거짓말한다는 건 뭐예요?”

“말 고대로여. 만날 때마다 맨날 또래한테 가서 거짓말이나 치구 있든디. 한참을 쫑알대다가 상대가 속성한 얘기 좀 허면 그제야 지 갈 길 가드라니까. 지한테는 남이 괴로운 게 위로라도 되는갑지. 쯔쯧.”

할머니가 혀를 찼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두 어른은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창으로 고갤 돌렸다. 유리창 가득 멍이 든 얼굴이 떠올랐다.

'훔친 멍이 아니었어. 그게 다 맞아서 생긴 거라니……'

얼굴의 멍이 안 아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얼음물을 몸에 끼얹은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 애 속은 얼마나 많은 멍이 들었을지 상상이 안 갔다. 나는 묵혀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나라도 그 애를 도와주고 싶었다. 더 멍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힘이 되고 싶었다.

'어디에 신고해야 되지? 경찰서? 전화해선 뭐라고 설명하지? 아동학대라고?'

“근데 난 그 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멍 도둑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진짜 이름도, 사는 곳도 몰랐다. 터널에 들어갈 때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막막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할머니와 기사 아저씨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빈 의자를 붙들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할머니와 기사 아저씨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할머니에게 내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왠지 목이 멨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졌다.

“신고 좀 해 주세요. 경찰서, 112에…… 같이 신고 좀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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