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17년 신춘문예 당선작-단편소설]열린문

김선희

◇그림=조남원기자 cnwon@kwnews.co.kr

 남자가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옆집 문 앞을 지나쳐야 했다. 그는 옆집 문손잡이를 살짝 아주 살짝 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돌려보곤 했다. 옆집 사람이 이사 온 이후 생긴 습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옆집 문손잡이를 돌리는데 기대도 하지 않던 문이 열렸다. 남자는 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가 고민하면서도 자신이 이미 문을 밀고 있어 놀라고 문안으로 들어서며 이미 문안으로 들어선 것에 더욱 놀라며 옆집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안이 보였다. 구조는 남자의 집과 똑같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1층 같은 반지하의 나란한 집 구조를 다르게 만들만큼 사람들은 부지런하거나 창의적이지 못했다. 복도가 긴 집이었다. 남자는 집을 처음 보러올 때가 떠올랐다. 자신의 집과 똑같게 다른 집이었기에 집을 보러 온 것만 같았다. 남자가 휴대폰을 보았다. 안심해도 될 시간이었다.

 계단 두 개를 내려간 반지하의 집은 반지하 답지 않게 채광이 좋았다. 현관을 들어서면 길게 복도가 이어졌다 오른편으로 두 개의 방이 똑같은 크기로 자리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욕실이 붙어있었다. 세면대도 없는 욕실에 세탁기까지 놓아야 해서 좁은 욕실이 더욱 좁았다. 수도를 따로 내거나 세탁기를 놓을 공간이 더 있을 수 없었다. 집이 지닌 유일한 단점이었다. 복도 끝에는 주방이 있었고 거실이라 불리지만 이름보다는 옹색한 공간도 있었다.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남자는 복도를 따라 책꽂이를 놓는 상상을 했다. 상상 혹은 계획대로라면 남자의 집은 들어서면 세 개 혹은 네 개의 책꽂이를 따라가야 거실이 나올 것이었다. 두 개의 방 중 하나에는 오로지 책꽂이와 책과 책상만 둘 것이고 환한 창은 암막커튼으로 막아버리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남자는 집을 보는 중에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남자는 본가에서 책을 하나도 옮겨오지 않았고 남자의 복도는 그대로 빈 벽으로 남았다.

 집은 한적한 주택가 골목 안쪽이라 조용했다. 낮이 이렇게 조용하면 밤은 더욱 조용하지 않겠는가 싶은 기대도 들었던 남자의 마음처럼 방 두 개는 괴괴한 침묵에 가라앉아 있었다. 남자는 방 한가운데 책상을 놓고 벽면을 책꽂이로 두르고 그 외의 일상은 모두 다른 방에 두고 방 하나에는 자신과 책만 있게 하겠다고 그런 생각을 길게 이었다. 생활이 스미지 않은 방이라니 상상도 아니고 공상이나 망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라서 가벼운 흥분마저 일었다.

 집을 보러 왔을 때 집주인은 신발을 신은 채로 집에 들어섰고 방한가운데 서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집주인이 신발을 벗지 않았으므로 남자도 굳이 신을 벗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집주인처럼 가만히 서서 집을 둘러보았다. 사실 움직일 필요도 없을 만큼 작은 집이라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전 세입자가 빠져나간 집은 고요했다. 집주인은 여느 주인과는 달랐다. 보통의 집주인들은 세입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대가 조용할수록 더욱 열을 내어 집에 대해 설명하곤 했다. 볕이 잘 드는 집이라 장마철에도 제습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나 여름에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시원하다는 말은 봄에 많이 하는 말이었다. 외벽이 두툼해서 외풍 없고 따뜻한 덕분에 난방비가 적게 든다는 말은 가을에 하는 말이었다. 집에 덧붙이는 말들은 대체로 비슷했고 사람들이 주거공간에 바라는 것은 생각보다 크지도 거창하지도 않음을 보여주었다. 남자는 부동산에 열쇠를 맡기고 세입자가 들기를 기다릴 여유가 있는 집을 구할 형편은 아니었다. 그만큼 소란스런 집주인을 만날 수밖에 없었기에 조용한 집주인도 조용한 집만큼 마음에 들었다.

 주방은 간소했다. 새로운 세입자를 기다리며 새로 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싱크대는 집을 보다 오래되어 보이게 했다. 싱크대 혼자만 간결하고 새로웠다. 천장은 날림의 집들이 그러하듯 보통으로 낮아서 본가의 높은 천장이 복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흰색 싸구려 벽지로 덮인 흰 벽은 흰 벽으로만 있었다면 나름으로 충분했을 테지만 천장 모서리마다 체리 색 몰딩으로 덮여있어 촌스러웠다. 이사를 경험한 적이 없는 남자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어떤 것도 평가할 수 없었다. 능숙한 척 수돗물을 틀어보고 보일러의 연식을 묻고 화장실을 살펴야 했지만 그저 집 여기저기를 힐끔거렸다. 집을 보러 다니는 일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집주인은 방 두 개의 크기가 같아서 두 사람이 각기 살기 좋다며 혼자냐고 물었다. 남자는 혼자라고 대답하며 괜히 콧날이 시큰했다. 고아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집이라기에는 옹색하여 방이라 불러할 집을 보러 다니던 남자는 서울 살면서 독립이라니 무슨 허영이냐고 스스로를 혼내며 본가로 돌아오는 일을 자주 했던 터였다. 비슷하게 값이 싸고 고만고만 초라한 집들을 돌아보고 본가로 오면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었다. 애초 독립에 가까운 이사를 하려는 이유마저 흐려지는 편안함이었다. 이사 없이 20여 년째 한 집에 살아와서 그만큼 어지럽고 그만큼 정든 집안을 보며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방을 보러 다닌 것에 지친 나머지 독립을 꿈꿀 만큼 지긋지긋하던 본가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기도 했다. 남자가 변덕에 가까운 자신의 마음이 우스워서 다 그만두고 싶어질 때 지금의 집을 만났다. 독립하겠다는 말이 주변에서 잊힐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방 두 개는 그래도 집이라 해도 될 것이었다. 그렇게 남자의 첫 이사가 결정되었다.

 남자는 안쪽 방에서 인기척을 느끼고서야 자신이 자신의 집 현관에 서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남자는 조금의 놀람도 없이 서 있었다.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방에서는 길게 기침이 이어졌다. 몇 번 스친 옆집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옆집 사람은 기침이 잦았고 길었다. 한 번 기침이 터지면 오래도록 기침을 이어갔는데 처음 들을 때는 옆집에 폐병 환자가 이사를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쿨룩대는 기침으로 시작해서 혀가 뽑힐 것처럼 세게 그리고 오래 이어지는 기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남자는 명치가 아프고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소리가 들리면 기침을 할 때 느끼는 통증을 전해 받는 것만 같아서 베개를 머리 위에 올리고 최대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옆집 현관에서 듣는 기침소리는 남자가 자신의 집에서 듣는 소리보다 더 가깝지도 더 멀지도 않았다.

 남자가 집을 계약하며 반했던 집이 지닌 조용함은 비어있던 옆집에 사람이 이사 오면서 깨졌다. 오래된 적벽돌 건물은 외부의 소음은 의외로 잘 막아주었지만 옆집과의 거리를 막아주지 못했다. 옆집과 남자의 집은 본래 하나의 집이어야 했던 공간을 나누어 두 개의 집으로 만든 탓에 두 집 사이의 벽이 얇았다. 남자와 옆집 사람이 사는 층만 B101, B102로 호수가 나뉘어 있었다. 1층부터는 방이 4개에 한 층에 한 세대가 살았다. 불필요하게 긴 복도는 두 집을 합하면 거실로 포함되는 부분일 터였다. 지하 1층에 지상 2층 그리고 옥탑까지 얹은 다세대 건물이었지만 반지하 세대로 통하는 입구가 따로 있어서 다른 층에 사는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B101, B102로 이름 지은, 얇은 벽을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 두 개의 집은 대칭 구조였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은 대척점에 있었다.

 옆집 사람은 찾는 사람이 많았다. 택배 기사였다. 남자의 집과 숫자 하나만 다른 주소가 적힌 상자와 봉투가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배달되었다. 옆집 사람은 낮 시간동안 집을 고스란히 비우는 통에 택배기사는 남자의 집 문을 자주 두드렸다. 초반에 택배기사들은 비어있는 옆집 문을 오래 두드리고는 이어 남자의 집 문을 두드렸다. 남자는 집을 울리는 소음을 견디며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없던 것처럼. 택배기사들은 짧은 욕을 하며 옆집 사람에게 전화를 했고 무뚝뚝하게 부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옆집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놓고 지하 계단을 둘 올라 파란 대문을 닫고 갔다. 어느 순간부터 택배기사들은 옆집 문을 습관처럼 몇 번 두드리고 문 앞에 물건을 던지듯 놓고 가버렸다. 계단 두 개를 오르는 발길은 언제나 뛰는 듯 쿵쾅거렸고 지하와 지상을 막는 파란 대문은 쇳소리를 내며 닫혔다. 남자는 방바닥에 누워 소음을 견뎠고 울림에 흔들렸다.

  어느 날 남자는 옆집 문 앞에 택배 상자와 봉투가 던져지는 소리를 세며 하루 내내 바닥에 누워있었다. 다섯 번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택배 물품을 확인했다. 이후 남자의 일과가 되었다. 남자는 택배기사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시간을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옆집 문 앞으로 나가 택배 물품들을 확인했다. 송장번호와 주소가 적힌 종이에는 물품명까지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옆집 사람은 물품명을 숨겨야 할 만한 품목을 주문하지는 않는 듯 했다. 샴푸나 화장품, 비누 따위의 생필품에서부터 생수, 과자, 옷, 책 등등 구입 품목은 다양했다. 거의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 쇼핑으로 대체하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남자는 옆집 사람이 아침에 케라시스 샴푸로 머리를 감고, 아이리스 생수를 마시고, 생리대는 바디피트를 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책을 주문하는데 안타깝게도 택배 상자 겉면의 정보만으로는 주문한 책이 무엇인지까지 알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는 옆집 사람은 독서로 밤을 보내는 것일까 남자는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지만 남자는 택배 상자를 내려다보기만 할 수 있을 뿐 그 상자를 열어볼 수는 없었다.

 남자가 서 있는 옆집 현관 한쪽에는 빈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수요일 저녁에 배출해야 하는 종이 상자는 날을 계속 놓쳤는지 상당한 양이었다. 택배가 오는 정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양이기도 했다. 말끔하게 착착 접어 묶어 세워둔 모습이 옆집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같았다. 좁은 현관을 더욱 좁게 하는 건 택배 상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신발이 많았다. 한쪽에 놓인, 플라스틱으로 조잡하게 칸을 나누어 쌓은 신발장은 이미 꽉 차 있었고 현관 바닥에도 신발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신발만으로도 옆집 사람의 취향이 선명했다. 낮은 굽의 하얀 운동화는 단정하고 편해보였다. 가느다란 굽이 인상적인 검은색 구두는 발목을 감싸는 끈이 달린 화려한 디자인이었다. 운동화는 편하게, 구두는 화려하게. 정확하게 나뉘는 취향대로 정리된 신발은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양의 신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게다가 신발들은 서로 비슷비슷해서 굳이 이렇게 닮은 모양의 신을 여러 켤레 사야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마저 들었다. 남자는 자신의 발치에 놓인 신발들 중 하나에 자신의 발을 가만히 대보았다. 옆집 사람은 발이 작았다. 남자는 이미 옆집 사람의 발 치수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택배 상자 겉면에는 선택 옵션 225, 화이트, 한정수량 깜짝 특가라 쓰여 있었다. 225 사이즈는 어느 정도 크기의 발일지 감이 오지 않아 280 사이즈인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던 남자는 지금 225 사이즈와 280 사이즈 차이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쥐면 뿌듯하게 손을 채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 남자는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현관 구석에는 15kg짜리 고양이 사료가 푸대 째 놓여있었다. 남자는 고양이 사료를 배달한 택배기사가 했던 욕을 기억했다. 듣기 민망할 정도의 노골적인 욕설이 이해될 만큼 커다란 푸대였다. 프로베스트캣이란 이름이 쓰인 사료 푸대는 다른 덧입힌 포장도 없이 푸대 째로 배달되었다. 질긴 비닐 푸대 앞에 선 남자는 옆집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15kg이나 되는 고양이 사료를 어디에 쓰려는가 싶어 의아해했다. 남자는 푸대를 바라보며 개를 마취제로 재워 상자로 배달하는 입양 서비스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떠올렸다. 고양이까지 택배로 담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던 때가 있었다. 지금 보니 사료는 반 넘게 줄어있었다. 옆집 사람의 부지런한 산책의 결과일 것이었다. 그 옆으로 겹쳐 쌓은 높이가 적어도 30센티는 될 양의 빈 햇반 용기가 놓여있었다. 남자가 버린 것이었다.

 남자는 본가에서 독립해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온 이후 한 번도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았다. 사실 요리를 할 만한 주방은 아니었다. 새로 해 넣은 싱크대는 개수대와 그릇 몇 개를 올려놓을 공간이 전부였다. 가스레인지도 없었고 옵션으로 더해져 있는 냉장고는 냉동칸도 따로 있지 않은 작은 사이즈였다. 냉장고의 작은 크기에 반해 세탁기는 12kg짜리 통돌이 세탁기라서 좁은 욕실에 불편함만 더해주었다. 남자는 밥을 해먹을 일이 없었기에 냉장고가 클 필요가 없었지만 세탁을 자주할 일이 없었기에 세탁기가 커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 외에 가전제품은 역시 옵션인 전자레인지와 남자가 가져온 전기 주전자가 전부였다. 텔레비전조차 없었다. 남자는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 데우지도 않은 3분 카레를 그 위에 부어서 한 끼를 넘기거나 역시 햇반을 데워 참치캔을 뜯어 한 끼를 때우는 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곤 했다. 3분 미트볼이나 3분 짜장으로의 변주가 있었고 고추참치나 야채참치로의 변화도 있었다. 식사는 하루 한 번이었고 식사 후 빈 햇반 용기를 꼼꼼히 씻어 말려서 쌓아놓았다. 남자는 벌레가 생기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기 때문에 빈 햇반 용기와 참치 캔을 꼼꼼하게 닦았다. 남자의 냉장고는 생수통 외에 들어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조로운 식생활이었다.

 씻어 말린 참치 캔은 매주 목요일 새벽 2시가 되면 골목에 내놓았다. 캔은 폐지보다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에 폐지를 모으러 골목을 다니는 할머니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가져갔다. 재활용 청소차가 지나는 수요일을 피한 것은 할머니들이 캔을 챙길 수 있게 하기 위한 남자의 배려였다. 플라스틱은 할머니들의 관심 밖이었기에 한 번에 모아 내놓을 요량으로 현관 한 쪽에 쌓이기 시작했다. 햇반 용기는 어느새 무릎 높이가 되었다. 남자는 이를 파란 대문 바깥에 내놓았다. 정확히 수요일 저녁이었다. 나온 김에 편의점으로 담배를 사러 가다가 그날따라 일찍 집에 돌아온 옆집 사람과 골목에서 마주쳤다. 남자는 인사도 없이 엽집 사람을 지나쳤지만 대문이 삐걱이며 열리는 소리에 맞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옆집 사람은 남자가 보는 것은 모르는 것 같았지만 조금 머뭇대다가 햇반 용기를 뭉치 째 들고 들어갔다. 남자는 빈 햇반 용기에 무슨 용도가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말릴 이유도 물을 까닭도 없었기에 그대로 편의점으로 갔다. 그때의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지 그 이후로도 내놓은 햇반 용기도 옆집 사람이 챙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옆집 현관에는 햇반 용기가 쌓여있었다. 남자는 수요일이 아니더라도 옆집 사람이 올 것 같을 때에 맞추어 햇반 용기를 대문 앞에 내놓았다. 쓸모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상당한 양이 현관에 놓인 걸 보니 옆집 사람이 그간 꾸준히 챙긴 것도 같아서 남자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미 어두운 바깥에 맞춰 역시 어두운 현관 앞에 제법 서 있었던 탓인지 내부가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현관을 따라 이어진 긴 복도에는 놀랍게도 책꽂이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남자가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상상하고 계획했던 것처럼 네 개의 책꽂이가, 첫 번째 방문 바로 옆까지 맞춘 것처럼 놓여 있었다. 5단짜리 책꽂이에는 빼곡하게 책이 꽂혀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알라딘에서 책을 사는 정도로는 채울 수 없는 양이었다. 남자가 이사를 계획 했을 때 제일 많이 든 걱정은 책 짐이었다. 남자의 독립에 사람들의 걱정이 뒤이었다. 책 짐은 나르고 날라도 티가 나지 않고 무겁기는 또 무거워서 이사 때 가장 힘든 종류의 짐이라는 말들이 들렸다. 그에 제풀에 기가 죽어 본가의 책을 옮겨오지 않았던 남자와 다르게 옆집에는 책이 가득한 것에 남자는 놀라웠다. 옆집 사람의 이사가 분주하고 하루 내내 걸렸던 이유는 책 짐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남자는 약간의 옷가지와 이불 한 채 그리고 전기주전자와 스탠드, 몇 권의 책을 이삿짐의 전부로 삼았다. 천천히 옮겨오겠다는 생각은 생각으로 그쳤고 남자의 집은 거의 비어있는 상태였다. 단출하고 조용하고 초라하기까지 했던 남자의 이사와는 다르게 옆집 사람은 이사 당일 내내 시끄러웠다. 하루 종일 짐 나르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말소리가 벽을 통해 남자에게 전해졌고 남자는 이날 하루만 시끄러운 것일 거라고 자신을 진정시켰다. 평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고 누운 채로 남자는 옆집에서 넘어오는 소음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위층도 그 위층도 조용한 건물이니 옆집 사람도 분명 그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과 자신처럼 조용한 사람만 세입자로 들일 거라는 집주인에 대한 까닭모를 믿음으로 그날 하루치 소음을 버텼다.

  확신과 믿음은 다음날부터 이어진 소음으로 깨지고 말았다. 옆집 사람이 크게 시끄러운 사람이라기보다 집과 집 사이의 벽이 얇은 문제였고 남자 쪽에서 내는 소리는 거의 없다보니 옆집 사람은 벽이 얇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소음이 넘어오는 것에 맞추어 더욱 조용히 움직였다. 옆집 사람이 없을 때 소리가 날 일들을 해치우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옆집 사람은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조심스러울 일이 없었고 그렇게 소음이 넘어오는 것임을 남자는 시간을 두고 차츰 깨달았다.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 남자는 옆집 사람이 내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자신의 소리를 죽여 나갔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은 법이니 더욱 기척을 죽이는 것으로 옆집의 소음에 소극적으로 대항했다. 주황색 귀마개를 주물럭거려 귀를 막기도 하고 베개를 머리 위에 올리곤 꾹 누르고 버티기도 했다. 들리는 소리는 막을 길이 없었다.

 소리는 정보가 되었다.

 옆집 사람은 아침이면 오래 기침을 이어가며 깨어났다. 알람을 여러 번 다시 맞추며 시간을 미루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알람이 길지 않은 간격으로 멈추었다 다시 울리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아 옆집 사람이 저혈압은 아닐까 남자는 추측했다. 샤워기 물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물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려 애쓰는 것이라 짐작 하기도 했다. 드라이기 소리도 길었다. 아침에 나는 가장 큰소리였다. 옆집 사람의 긴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남자는 이해하기로 했다. 남자는 당연하게도 드라이기가 없었다. 아침마다 양쪽 방을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이어지다가 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 열쇠로 문을 잠그는 소리,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금속성의 소리가 지나가면 B101, B102 모두에게 정적이 찾아왔다. 남자는 옆집 사람의 첫 번째 알람에 깨었다가 옆집 사람이 대문을 닫는 소리에 안도하고 천천히 다시 잠들곤 했다. 초반에는 다시 잠드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남자는 옆집 사람의 아침 준비를 듣다가 다시 잠들게 되었다. 옆집 사람은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왔고 규칙적인 일과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바쁜 사람인 것 같았다.

 남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시는 것, 마신 커피가 이뇨작용을 활발히 해서 길고 긴 소변을 보는 것이 남자의 주된 일과였다. 그것만으로도 남자는 일상이 넘치는 것만 같았다. 남자가 그나마 까다롭게 구는 것은 오로지 커피뿐이었다. 그렇다고 베토벤처럼 원두를 일일이 60알씩 세어 한 잔을 끓이거나 커피 거품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생두를 사다가 로스팅을 하거나 특정 산지의 원두를 고집하지도 않았다. 신맛이 강하지 않은 원두를 사다가 그때그때 그라인더로 갈아 드리퍼에 여과지를 올려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이 전부였다. 소박하다면 소박할 수 있는 고집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한 때는 관리가 까다로운 융 드리퍼로 커피를 내리기도 했고 에어로프레스를 사다 원두를 바꿔가며 여러 잔 맛을 보기도 했다. 여섯 잔인가를 연속으로 마신 후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왼쪽 관자놀이에 바늘이 박혀드는 기분이 들었을 때 남자는 생각했다. 우아한 자살의 방법을 찾았다고. 그런 모든 고집을 남자는 지금 사는 집 바깥에 두고 왔다.

 이제 남자에게 남은 철칙은 두 가지 뿐이었다. 원두를 미리 갈아놓지 않는 것, 끓인 물을 다시 끓여서 커피를 내리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만 지켜도 텅 빈 집이 커피 향으로 가득할 수 있었다. 남자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주전자와 드리퍼 그리고 여과지만 있으면 되는 핸드드립 방식이 가장 간단했다. 모카포트로 뽑아내는 진한 커피가 간절할 때도 있었지만 남자의 집에는 가스레인지가 없었고 커피를 위해 가스레인지를 설치하는 것은 과한 일이었다. 물론 어느 날의 남자는 내일은 꼭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본가에 잠들어 있는 모카포트를 가져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날의 남자는 보통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니 평소보다 더욱 일상을 낭비했으며, 유일하게 부지런한 일과인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조차 하지 않고 오래도록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날일수록 다양한 의지들이 무너져 내렸다. 남자는 흰 벽을 타고 내려앉는 일상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에게 의지가 넘칠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였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가며 목록을 늘렸다 줄이며 그저 누워있었다. 옆집 사람이 부재한 낮 시간은 사방이 조용하고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기척만 멀리서 들려서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남자는 안쪽 방에 언제나 깔려 있는 이부자리 위에서 내키면 이불을 둘둘 말아 안고 있기도 하고 괜히 머리끝까지 이불을 쓰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꼭꼭 덮은 채로 누워있었다. 눈에는 언제나 텅 빈 천장이 보였다. 당연했다. 남자는 천장을 보며 체리 색 몰딩을 따라 귀퉁이마다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었다. 네 귀퉁이를 모두 돌 때 즈음이면 하루가 지나기도 했다. 맨 오른쪽 귀퉁이에서는 해야 했던 일을 떠올렸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 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다음 귀퉁이에서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상상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늘어놓곤 하는 세 번째 귀퉁이에 시선이 닿으면 다음 귀퉁이로 넘어가지 못하고 한참 이야기를 연해 곱씹었다. 마지막 네 번째 귀퉁이에서는 실패한 일들을 되새김질하곤 하는데 이미 일어난 일이 자동 연상되는 그 과정의 끝은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벌렁 누워버리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이렇게 한없이 사방 네녁의 달리기를 이어가는 안쪽 방의 이중창은 언제나 닫혀 있었다. 창의 바깥 유리는 투명하지만 안쪽 유리는 하운드투스 체크와 유사한 무늬가 들어있어 안에서 바깥을 볼 수도 없었고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침부터 해가 드는 방이었다. 하루 내내 해가 빠지지 않았다. 남자는 커튼을 달아서 빛이 들어오는 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하면서도 막상 움직이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안이 들여다보였다면 다른 문제였을 것이 분명했지만 유리의 무늬는 부옇게 벽처럼 안과 밖을 나누었다. 남자는 커튼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내일은, 이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건너갔다. 미루다보니 계절이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쉬웠다. 빛이 강하게 쳐들어 눈이 부시고 흰 벽지가 더 희게 빛나면 남자는 창문을 등지고 돌아눕거나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버티다가 답답함에 눌려 잠이 들었다. 답답함이 부른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짧게 나눠 꾸다가 이불을 차내기도 했다. 그러면 빛이 눈꺼풀을 흔들었고 잠은 흩어졌다. 그렇게 깨어나면 남자는 내일은 꼭 커튼을 사다 달겠다고 다짐했고 그때마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매번 내일을 기약해야했다. 오늘이 다르지 않은 내일은 없는 것임을 남자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지만 내일이란 말은 손쉽고 가벼워서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선뜻 집기도 편했다.

 저녁으로 갈수록 방의 흰 벽은 빛을 잃었고 체리 색 몰딩도 더 어두운 색으로 물들다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그때가 되어서야 옆집 사람이 대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철컹이며 대문이 닫히는 소리, B101호의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쩔렁이는 소리, 누름쇠가 풀리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가 나면 남자는 조심스레 방을 나가 복도 벽에 붙었다. 귀를 대지 않아도 소리는 쉽게 넘어왔다. 옆집 사람이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디오를 켜는 것이었다. 남자가 커피 향으로 집이란 빈 공간을 채우듯 옆집 사람은 소리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대체로 피아노곡이었는데 베토벤과 바흐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음반이 그것뿐인지 의심스러웠지만 남자는 바흐 연습곡보다는 베토벤 소나타 쪽이 더 좋았다. 가끔 아이돌 노래가 섞이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빅뱅의 노래였는데 샤이니의 신곡이 나오자마자 바로 노래가 바뀌었다. 푹 빠졌는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 소리도 들렸는데 남자는 옆집 사람이 노래를 잘하지 축에는 끼지 못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옆집 사람이 작게 노래를 따라 부르다 멈추면 남자는 그것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가 나고 도마와 칼이 탕탕대는 소리가 나고 음식 냄새가 스며오면 옆집 사람의 저녁 시간이었다. 카레 냄새가 가장 잦았고 라면이 그 다음을 이었다. 자주 두부를 조리는 것 같았고 김치를 볶기도 했다. 요리에 양파를 많이 넣는 것이 옆집 사람 나름의 요리 방법 같았다. 매번 양파 익는 달달한 냄새가 넘어와서 남자의 위를 자극했다. 설탕을 적게 쓰고 그 대신 양파를 많이 넣어 단맛을 내는 요리법을 남자는 좋아했다. 옆집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생선을 굽는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지 생선 냄새는 잘 스며드는 때문인지 남자의 집까지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럴 때면 남자는 마일드 참치 캔을 뜯고 햇반을 데워 식사를 했다. 가진 먹을거리 중 그나마 가장 비린 것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치고 몹시 부지런한 옆집 사람의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 치우는 물소리가 났다. 남자도 옆집에서 나는 소리에 맞춰 햇반 용기와 참치 캔을 씻어 싱크대에 엎어두었다.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치우는 모습까지도 부지런한 옆집 사람이었다. 식사 후면 옆집은 조용해졌다. 간간 기침 소리가 들리고 같은 노래가 계속 반복되는 것 외에 별다른 기척이 없었다. 아침의 부산함과 다르게 밤이면 차분하게 가라앉는 옆집이라 소리가 끊어지면 남자는 그제야 벽에서 떨어졌다. 다시 안쪽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누워 어둠을 노려보는 일과를 이어갔다. 남자는 불조차 켜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이 지나 밤이 되면 남자는 산책을 했다. 남자가 집 아닌 곳에서 하는 거의 유일한 일이기도 했다.

 남자의 산책은 옆집에서 사료를 담는 소리가 알림이었다. 쌀알보다 크지만 그보다 가벼운 사료는 소리도 컸다. 옆집 사람은 지퍼백에 사료를 담고 햇반 용기를 챙겨서 산책을 나갔다. 10시 이후 정해진 시간을 꼭 지켰으며 그 횟수는 일주일에 3일 정도였다. 날씨가 추워지면 산책은 더 잦아졌다. 골목을 돌며 길고양이가 있을만한 장소나 편히 먹이를 먹을 수 있을 곳을 찾아 햇반 용기에 사료 한 줌씩을 놓고 다니는 것이 옆집 사람의 산책이었다. 남자는 옆집 사람의 형상이 간신히 보일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 산책을 따라갔다. 경계심이 강한 길고양이들은 먹이를 놓고 간 사람이 멀어진 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덕에 남자는 옆집 사람보다 더 많은 고양이를 만났다. 사료를 먹던 고양이는 남자의 발걸음 소리에 급하게 몸을 돌려 사라지기도 했다. 처음 남자는 자신이 지나간 후에 다시 고양이가 오는지 보기 위해 멀리서 기다렸다. 옆집 사람을 놓치면서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고양이들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료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사료로 다가오기도 했다.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에 먹이가 있어도 건드리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꾸준한 산책이 이어지자 고양이가 먼저 나와 기다리는 일도 일어났다. 옆집 사람은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자주 보는 고양이일수록 기쁜 탄식을 내뱉고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고양이와 놀기도 했다. 남자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자는 인터넷을 통해 옆집 사람처럼 길고양이들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사람들이 캣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허기진 고양이가 저체온증으로 죽기도 해서 사료 한 줌이 절실하다는 글도 보았다. 소박하고 간절한 걱정들이 길고양이와 함께 넘쳐났다. 옆집 사람이 겨울의 찬 공기를 견디며 산책을 나가는 이유였다. 늦은 시간 고양이가 다닐만한 골목은 어둡기도 하고 으슥하기도 했다. 남자는 옆집 사람의 산책에 더 열심히 동행했다. 옆집 사람과 남자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으나 남자는 함께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산책에 동행하지 못하면 남자는 옆집 사람의 안부를 걱정 했다. 뒷모습이 더 익숙해서 길에서 만나도 바로 알아볼 자신이 없을 것 같았으나 남자는 옆집 사람을 잘 아는 것처럼도 느꼈다. 더 가까워지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는 보폭을 빨리 해 거리를 좁혀보기도 했다. 옆집 사람은 고양이와 마주칠 기대에 예민하였을 뿐 뒤따르는 남자에게 관심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옆집 문손잡이를 돌려보는 습관이 생겼다. 열릴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남자가 맺는 사람과의 인연은 매번 화전민이 지나간 자리 같았다. 불탄 자리만 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이 열렸고, 남자는 저신의 집과 똑같은 모양의 현관에 서서 이것은 계시라고 생각했다. 절박한 사람은 작은 우연도 필연처럼 포장해버릴 때가 있는 법이었다. 초대와 같다고 느꼈다.

 남자는 책꽂이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읽고 싶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휴대폰 손전등을 켤 수는 없었다. 남자가 열고 들어온 문은 옆집 문이었고 서 있는 곳은 옆집 현관이었다. 시간을 보니 옆집 사람이 산책을 준비할 때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남자는 선택해야 했다. 문을 열고 나가 본래 가려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도 될 것이었고 문을 열고 나가 문을 닫고 정중하게 문을 두드려도 될 것이었다. 이대로 기침 소리가 나는 안쪽 방으로 걸어 들어가도 될 일이었다. 남자는 어느 쪽이든 가능하다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선택지가 여럿 존재한다는 만족감에 남자는 옆집 현관에 서 있는 지금이 무척 두근대고 설레었다. 어느 쪽도 좋았고 어느 쪽이든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았다. 기대감은 망상을 불렀다. 어쩌면 옆집 사람은 ‘예쁜척하다 잠들 잠옷’을 입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는 쇼핑몰에서 옷에 짓는 이름들이 얼마나 우스운지 옆집 사람의 택배를 통해 알았다. 택배 봉투나 상자의 글씨들을 읽으며 소리 내어 웃을 때도 있었다. 가장 우스웠던 것은 ‘벨트가 헐렁하면 루즈벨트 원피스’였다. 그 긴 이름이 송장에 다 쓰여 있는 것까지도 우스워 남자는 어떤 옷이 그런 이름을 가질까 하여 택배를 뜯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남자는 옆집 사람을 따라 산책할 때면 저 티셔츠가 ‘발레니 핑크’라는 이름을 가진 봄 신상 균일가 옷이려나 싶었고 신고 있는 양말이 ‘언니네 꽈배기 무지 아이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복도가 끝나는 곳에 있는 바깥쪽 방에 옷들이 걸려 있을 것이었다. 남자는 옆집 사람이 있을 안쪽 방으로 들어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옷들의 이름을 묻고 싶기도 했다. 옆집 사람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직접 골랐을, 그렇게 우스운 이름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되묻고 싶기도 했다. 남자가 옷 이름을 줄줄 말하면 옆집 사람은 웃을 것 같았다. 고양이 앞에서 웃는 것처럼 남자를 향해 웃을 것이었다.

 남자는 이 설렘을 좀 더 누리고 싶어졌다.

 남자는 옆집 문을 열어보는 습관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언제고 다시 문이 열릴 것이었다. 믿음까지 들었다. 남자는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옆집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기침 소리와 샤이니 노래 소리가 문 안에 닫혔다. 남자는 자신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고 복도 벽에 기대어 앉았다. 옆집 사람의 산책을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액정 화면의 불빛이 남자의 얼굴을 비추는 것 외에 집에는 불빛이 없었다. 이윽고 산책을 준비하는 부산한 소리에 이어 옆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대문이 삐걱대는 소리를 기다렸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남자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산책 시간이었다. 동행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남자는 신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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