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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유년 시절 보낸 영월 풍광에 매료 목탄으로 달빛 그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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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목탄화가' 이재삼 화백(사진 왼쪽)이 경기도 양평 작업실에서 직접 작품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남덕기자

제3회 박수근미술상 '목탄화가' 이재삼 화백

시상식 15일 오후 2시 양구 박수근미술관

달빛에 몰두 왜?

“한국적 토양 반영 위해 목탄 집어

달빛은 아시아의 문화·감성의 빛”

유독 대작 많은 이유는

“작은 나무보다 숲 속 느낌 주고파

그림 판매 목적 소품 선택 않을 것”

박수근미술상 수상 의미

“잠시 흔들릴 때 격려·재충전 계기

꾸준히 목탄 이용 대작 그리고파”

“재삼아 너는 꼭 화가가 돼야 한다.”

1973년 영월 봉래국민학교 졸업식 날.

교실을 막 나서려는 제자에게

담임 선생님은 악수를 청하며

부탁 같은 말 한마디를 남긴다.

그저 구석진 다락방에서

공책 빼곡하게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던 소년에게는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으레 건네는

선생님의 덕담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소년에게 예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45년의 세월이 흘러 어느덧 화가가 된 소년에게는 세 번째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이 붙게 됐다.

바로 목탄화가 이재삼(58)이다. 지난 5일 이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으로 향했다.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그대로 섬이다. 고향인 영월의 모습과도 닮은 듯했다. 반갑게 맞이하는 그와 부인 김현미(55)씨. 작업실과 연결된 갤러리는 그의 작업 연대기를 보는 것처럼 작품들이 2~3층 높이의 벽면에 가득 걸려 있다. 거의 대작들이다. 탄성이 흘러 나왔다. 온통 검은색의 향연이지만 밝은 빛이 새어 나온다. 그가 천착하고 있는 달빛이다. 난로 옆에 자리를 잡고는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에 압도돼 본분(?) 도 잊은 채 대뜸 왜 대작이냐고 물었다. 밥벌이가 괜찮겠냐는 통속적인 물음. 이미 그는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미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는지 옅은 웃음을 띤 채 입을 뗐다.

“작가마다 소품을 할지, 대작을 할지 선택을 해서 작업을 끌고 가는 것인데 저에게는 대작이 맞았어요. 작은 나무나 인물을 그리는 것보다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화랑 주인들이 작업실에 오면 소품을 주로 찾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판매할 생각에 제 작업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생활이라는 현실적인 고민이 스쳤지만 그 보다는 작가로서의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재삼이라는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거창한 수상소감 대신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 궁금했다.

“그 소식을 듣자 마자 스치는 것은 어… ”

그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작업실의 천장을 응시한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였어요. 사실 올겨울은 5m짜리 대작 두 점을 작업하는 데 매달렸었거든요. 한 4~5개월째 접어들면서 아주 힘든 시기였어요. 그때 날아든 소식이니까 아주 반가웠지요. 그런데 상이라는 의미보다는 제가 잠시 흔들릴 때 박수근 선생님이 환생해서 격려하고 어깨 두드려 주시면서 '지금 살아온 대로 그대로 밀고 가도 돼'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저에게는 굉장히 위안이 되고 다시 한번 몸을 재충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죠.”

가슴에 담아 뒀던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털어놨다.

“저 같은 경우 주로 대작을 하니까 그런데서 오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요. 사실 팔리는 작업은 안 하거든요.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대한 고집만 있으니까요. 작가 자신에게는 명분이 되고 소명의식 같은 것으로 설명이 되지만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모자라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죠.(웃음) ”

그도 유행의 한가운데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현대미술, 컨템포러리 아트에 휩쓸려 살던 시절이다. 서른중반 즈음 문득 회의가 몰려왔다고 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한국사람이라면 한국적인 토양이 반영된 그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생각을 하면서 추억이나 유년 시절을 역추적하기 시작했죠. 결국 강원도 그리고 고향 영월이 갖고 있는 자연 풍광 이런 것들이 저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제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어떤 서구 중심적인 생각을 청소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한 목마름이 그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

그렇게 그는 3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있었다. 목탄을 회화의 재료로 쓰기 위한 실험과 노력의 시간이었다. 이 시기 부인과 함께 전국의 오지를 돌며 나무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시기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는, 또 작가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그가 찾아낸 것이 바로 달빛, 밤의 풍경이었다.

“화가들은 대부분 태양의 풍경을 그리죠. 태양의 빛이 명료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반전과 역설을 꿈꿔 왔어요. 달빛은 아시아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관조의 문화라고 할까요. 하지만 사실 달을 시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저는 달빛이 비친 전경을 제 마음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는 '심상풍경'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달빛은 감성의 빛이니까요.”

어린 재삼은 이모의 농사일을 돕는 어머니를 따라다니곤 했다. 변변한 불빛 하나 없어 달빛에 의지해 걸어야 했던 밤길은 무서움보다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어머니를 두어 걸음 앞서 걷던 재삼에게는 달빛이 어슴푸레 비치는 곳 너머의 검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이제는 작가가 된 이재삼이 커다란 캔버스 위에 풀어내고 있다.

“박수근 선생님이 (박수근미술상으로)저에게 작가로서 초심을 잃지 말고 그대로 살아가라는 의미를 주신 것 같거든요. 앞으로도 꾸준히 목탄을 이용한 대작작업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어느 순간에 아마 제 작품 안에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결국은 달빛에 비친 밤의 전경이 더 중요한 거니까요. 계속해서 달빛소리, 달빛기운, 달빛냄새를 목탄으로 채색하고 싶습니다.(웃음)”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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