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년특집 신춘문예 당선작-동화 조성희]'우리 집에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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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조남원기자

“아빠, 또 파요?”

나는 아빠가 들어간 땅 속을 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조금만 더 넓혀주려고.”

저 아래서 아빠의 목소리가 천천히 올라왔다.

손전등으로 땅 속을 비춰보았다. 빛이 빠르게 어둠을 쫓아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땅 속으로 발을 넣었다. 땅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내 두 팔을 벌린 만큼이나 컸다. 아빠가 땅 속에 세워둔 둔 사다리를 밟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크엉, 크엉, 엉엉엉.”

발밑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났다. 월이었다. 월은 자기가 살던 소소행성을 떠올릴 때마다 슬퍼했다. 그 모습을 본 아빠는 곧바로 집 뒷마당의 땅을 파서 그 안에 월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월이 우리 집에서 자는 것보다 마당에 나가서 흙을 파고 자는 걸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월은 흙 속에 있는 게 좋다고 했다. 나도 그런 월을 따라 흙 위에 누웠을 때, 그 마음을 알게 됐다. 침대 위에 누워 있을 때하고는 느낌이 정말 달랐다. 마치 내가 땅이 된 듯,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루리야, 여기 입구 문은 닫고 내려오는 거지?”

“아, 맞다. 얼른 닫고 올게요.”

나는 아빠 말에 아래로 내려가고 있던 걸음의 방향을 얼른 위쪽으로 돌렸다. 월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사람 눈에는 괴물처럼 보일 수 있는 외계인이니까. 처음에는 외계인을 만나고 싶었던 나조차도 월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물론 지금은 월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좋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다. 바로 월을 잡아갈지도 몰랐다.

다시 입구 문을 닫고 땅 속으로 내려갔다. 그때마다 흙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땅 속 냄새는 언제 맡아도 참 좋았다. 세상의 모든 씨앗들을 키워내는 흙 속에 있으면 나도 씨앗처럼 쑥쑥 자라나는 느낌이 들었다.

“자꾸자꾸 눈물이 나.”

월은 익히지도 않은 고구마를 씹으면서 울고 있었다. 월은 고기는 안 먹고, 고구마나 감자, 오이 같은 채소를 좋아했다. 외계인은 특별한 걸 먹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살아있는 동물도 먹지 않았다. 실수로 지렁이라도 밟으면 온 종일 울었다.

“이것도 먹어.”

“고마워.”

나는 월에게 텃밭에서 따온 노란 참외를 하나 건넸다. 슬플 때는 맛있는 걸 먹고 힘을 내는 게 최고다. 이건 아빠가 내게 알려준 방법이다. 월은 참외를 받자마자 한 입에 꿀꺽,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달콤해. 우리 행성에는 없던 맛이야.”

“넌 지금 태양 하나를 삼킨 거야. 난 참외를 먹을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 햇살을 듬뿍 담고 자랐으니까 그건 태양이나 마찬가지라고. 이걸 먹고 곧 태양처럼 빛날 거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월의 보랏빛 얼굴이 금세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럴 줄 알았다. 월은 기분에 따라 얼굴색이 수시로 변했다. 슬플 때는 보라색이지만, 평상시에는 까만색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빨간색, 기분이 진짜 좋을 때는 초록색이 됐다. 얼굴색만 봐도 월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루리야, 이거 가져.”

“이게 뭐야?”

“선물이야. 네가 나한테 태양을 선물했으니까, 나는 별을 선물할게.”

월이 건넨 손톱만 한 별은 딱딱했지만 계속 노랗게 빛났다. 그 별빛을 손에 담고 있으니 내가 꼭 별처럼 느껴졌다.

“진짜 가져도 돼?”

“여길 봐. 난 이렇게나 많아.”

월은 자기 주머니 속에 담긴 별을 보여주며 웃었다. 신기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선물은 별이 아니라 월이었다. 월은 나와 생긴 것도 다르고,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왔지만, 우리는 언제나 마음은 물론 생각까지 잘 통했다.

월은 내게 매일 우주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때마다 나는 끝없이 넓은 세상을 꿈꾼다. 월은 자신의 행성이 사라져서 슬퍼했지만, 나는 이제 월이 있을 곳이 우리 집뿐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월이 좋았다.

“루리야, 이제 우리는 그만 올라가서 자자.”

땅 파는 걸 다 끝낸 아빠가 말했다.

“월, 내일 보자.”

“그래, 내일은 내가 올라갈게. 텔레비전 보러.”

월이 초록빛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울퉁불퉁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월의 부드러운 손을 꼭 잡았다가 내려놓았다. 월은 내가 책이나 영화에서 본 외계인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월은 외계인을 떠나 그냥 월이었다. 몸이 아빠보다 두 배는 컸지만, 얼굴은 코알라를 닮았고, 하는 행동은 꼭 아기 같았다.

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웠다. 한 손으로는 월이 준 별을 만지면서 벽에 붙어있는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외계인을 우리 집에 초대합니다.>

안녕? 외계인! 나는 가온초등학교 4학년 이루리라고 해.

언제든 우리 집에 놀러 와! 올 때까지 기다릴게. 꼭 만나고 싶어.

우리 집 주소: 산골마을 만만산 마을 17번지 파란 지붕 집

이 초대장은 내가 학교에서 만든 거다. 특별한 사람을 초대하는 초대장을 만들라고 해서 외계인을 초대하는 글을 썼었다. 외계인을 만나러 우주에 가고 싶을 만큼, 외계인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든 초대장을 보고 진짜 외계인이 우리 집에 왔다. 그게 바로 월이었다. 그날은 월의 소소행성이 사라진 날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월이 우리 집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월은 소소행성이 사라지고, 우주를 떠나 지구에서 살 곳을 찾다가 내 초대장을 봤다고 했다.

“소소행성이 사라지던 날, 나도 사라지는 것 같았어. 그런데 네가 쓴 초대장을 보고 이상하게 힘이 났어.”

월이 나한테 했던 말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오랜 시간 아프던 엄마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월을 만나서 함께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게 조금씩 웃게 되었고, 힘도 생겼다.

'안 되겠다. 월이 한 번만 더 보고 자야지.'

월이 보고 싶었다. 나는 초콜릿과 당근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두꺼운 옷과 손전등을 챙겨 조용히 뒷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땅 속 입구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분명히 나올 때 아빠랑 닫고 나왔었다.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월이 사라졌을까봐 무서웠다.

나는 얼른 땅 속으로 들어갔다.

“월아! 월아!”

내 목소리가 땅 속을 가득 채웠다. 서둘러 월이 지내는 곳까지 내려갔지만, 월은 그곳에 없었다. 별 한 조각만 월의 이불 위에서 반짝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땅 속을 빠져나와 곧바로 아빠에게 달려갔다. 자꾸 눈물이 났다.

“아빠, 월이가 없어요! 월이가 사라졌어요!”

내 말에 잠들었던 아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멀리 가지 않았어야 할 텐데…… 얼른 월부터 찾아보자.”

아빠와 함께 집을 나왔다. 빛 하나 없이 캄캄한 마을 곳곳을 손전등으로 꼼꼼히 살폈다. 월을 찾아 뛰어다니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아픈 것도 몰랐다. 머릿속에는 온통 월 생각뿐이었다.

“아무래도 월이 다시 우주로 돌아 간것 같구나.”

“그럴 리 없어요.”

“어쨌든 외계인이잖니. 우리가 잘 모르는…….”

아빠 말에 나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가 틀렸다. 이제 소소행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월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 아빠, 저기 월이에요!”

그때였다. 이웃집 할머니가 월을 줄에 묶어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란 마음에 바로 월한테 뛰어갔다. 월의 얼굴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월! 사라진 줄 알았잖아. 할머니, 우리 월 좀 풀어주세요. 나쁜 애 아니에요.”

말하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다. 다리에 힘도 풀렸는지 서 있는 게 쉽지 않았다.

“뭐? 우리 월? 이 이상한 녀석이 자꾸 루리네 집이 자기 집이라기에 확인하러 가던 길인데, 네가 진짜 이 녀석을 데리고 있었던 거니?”

“네…… 월은 우리 가족이에요.”

“뭐? 가족? 루리 아빠,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루리 말이 맞아요. 일단 저희 집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아빠 말에 할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우리 집까지 함께 왔다. 나는 꽁꽁 묶인 월이 너무 불쌍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루리야, 울지 마. 너도 내가 울 때마다 마음이 아팠겠구나. 네가 우니까 나도 마음이 아파. 다음부터는 밤에 혼자 나가지 않을 게.”

아빠가 할머니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월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나는 그런 월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니까…… 루리 초대장을 보고 여기에 놀러 온 외계인이라는 거지? 월이 원하면 여기서 계속 같이 살 생각이고?”

“네. 우리가 아니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테고, 또 다른 데 가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같이 지내기로 했어요. 월에게는 이제 돌아갈 집이 없거든요. 함께 있는 동안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신경 쓰겠습니다.”

아빠한테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다 들은 할머니는 월을 바라보며 뭔가를 깊이 생각했다.

“저 녀석이 글쎄 우리 포도밭에 와서 돌아 다니길래 봤더니, 태풍 때문에 다친 포도들을 다 살려내고 있더라구. 우리 집 고양이 다친 눈도 고쳐주고 말이야. 그래도 우리랑 생긴 것도 다르고 해서 덜컥 겁이 났지. 근데 지금 보니 위험한 녀석은 아닌 것 같아. 월아, 가끔 우리 집에도 놀러오너라.”

할머니는 월을 꽁꽁 묶었던 줄을 풀어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할머니도 이제는 다 아셨을 거다. 월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걸. 지구에 꼭 필요한 외계인이라는 걸 말이다. 이렇게 한 명, 또 한 명씩 월이를 천천히 알아가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저희가 마을에 피해 없도록 잘 돌볼게요.”

“그래. 그럼 난 가볼 테니, 나오지들 말어. 이건 당분간 우리끼리 비밀로 하자구.”

“네. 할머니, 고맙습니다.”

“루리 넌 좋겠구나. 새 가족이 생겨서.”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바로 나가셨다.

“나…… 이제 루리네 가족이야? 여기에 계속 살아도 돼?”

“당연하지! 난 이제 너 없이 못 살아.”

월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를 꼭 안았다.

“너네 그러고 있으니까 꼭 쌍둥이 같다.”

아빠 말을 듣고 거울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아빠! 부탁이 있어요. 월이 방을 마당 말고, 내 방 아래에 만들어주세요.”

“그래!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루리 방 아래 내 방, 좋다. 이제 여기가 우리 행성이야.”

월이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바로 창고에서 땅 파는 도구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또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 파는 소리가 이렇게 신나다니! 월이랑 나도 삽을 가져와서 땅 파는 걸 도왔다. 월은 땅을 파다 벌레가 나오면 조심히 잡아서 다른 곳에 놓아주었다.

“월아, 우리 집에 놀러오길 참 잘했지?”

월이 웃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내 방 아래, 월의 방이 있다. 나는 가끔 그 방에 내려가서 잠이 들고는 했다. 월도 가끔은 땅 속을 포기하고 내 방에 올라와서 같이 놀기도 하고 잠도 잤다. 이제 우리만의 새로운 행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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