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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무명의 마라토너 황영조 U대회 통해 운명 바꿨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하고 있는 황영조 선수.

페이스 메이커 불과했는데

영국 세필드U 마라톤 우승

1년뒤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라

2년마다 열리는 전 세계 젊은이의 스포츠 대축제인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이하 U대회)는 선수에게 있어 영원한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향한 첫걸음이다. 삼척 출신 황영조(45·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도 1991년 세필드U대회를 통해 한국 최고의 마라톤 스타로 발돋움했다.

당시 무명의 마라토너였던 황영조는 1991년 7월 영국 세필드U대회에서 대회 최고기록인 2시간12분40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그는 마라톤이 아닌 5,000m와 1만m 국가대표선수였다. 마라토너 선수로 입문하기 전까지 그저 이름 없는 마라톤 대회 페이스 메이커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국 세필드U대회 우승으로 황영조는 마라톤에서 자신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알렸다. 기세를 이어 다음 해인 1992년 제41회 벳푸-오이타 마라톤대회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기록을 경신(2시간8분47초)하며 세계기록에 다가갔다.

승승장구 하던 황영조는 일을 냈다. 같은 해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에 올림픽 사상 첫 마라톤 금메달을 안기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2년 뒤인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역시 제패하며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됐다. 세필드U대회의 우승이 결국, 세계 마라톤계에 황영조 시대를 처음으로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 됐다.

강경모기자 kmriv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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