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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대통령의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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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웃 나라로 곧잘 휴가를 떠났다. 2013년 4월엔 이탈리아 섬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휴가를 즐기다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찍힌 적도 있다. 2014년 1월엔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 넘어져 목발 신세를 졌다. 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크리스마스 휴가는 장장 17일간이었다. ▼1969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로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해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닉슨 대통령이 당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샌클레멘테에서 같이 휴가를 보내자고 박 대통령 부부에게 제안한 것도 그중 하나다. 참모들 사이에서는 “한미관계를 튼튼히 할 좋은 기회”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육영수 여사가 “우리가 지금 한가롭게 휴가를 즐길 때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대해 결과적으로는 없던 일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7월29일부터 8월2일까지 예정됐던 여름휴가를 취소했다. 당시 목선 남하,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변수가 많아진 북한 이슈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휘했다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지칭한 듯 ‘남조선 당국자’ 운운하며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고 노골적인 언급을 한 상황에서 휴가를 가는 것이 국내 여론 관리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부터 지방의 휴양지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했다는 소식이다.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직무대행을 내려놓는 등 집권 여당의 내분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때 휴가를 떠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머물며 정국 구상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안팎에서는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등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윤 대통령이 휴가를 마친 후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궁금하다.

권혁순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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