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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정일주의 지면갤러리]화려하고 신비롭게 ... 슬프고도 한스럽게야생화처럼 피어오른 그녀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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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경자-'슬픈 전설'의 찬란한 일탈과 고독의 신비

◇천경자 作 ‘화병이 된 마돈나(1990년)사진=천경자 기증·서울시립미술관 소장·서울특별시 저작권 소유

한국화에 채색 반복해 묵직한 발색 깊이 부여

도쿄·파리 공부후 귀국 대통령상 받아 스타덤

진취적·자유분방 성격 작품속 고스란히 담겨

자신·유명스타·며느리·딸 등 모델 삼아 그려

아름다움 극치속 여성의 슬픔 품는 데 힘쏟아

머리에 꽃을 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천경자(千鏡子·1924~2015년)는 왜 수많은 그림 속 주인공의 머리를 미모사와 장미, 백합과 양귀비로 장식한 것일까. 얼핏 머리에 꽃을 단 여인은 아름답고 매혹적인 존재, 흔히 ‘요부’라 불리는 팜므파탈로 여겨지지만 천경자의 그녀들은 사뭇 다르다. 저항할 수 없는 관능과 신비한 아름다움을 통해 남성들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팜므파탈과는 대조적으로 천경자의 주인공들은 드세고 단호하지만 무해하고 무심한 매력을 선사한다.

■채색화로 스타덤에 오른 ‘꽃과 여인의 화가’

‘꽃과 여인의 화가’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천경자는 수묵 위주의 한국화에 컬러풀한 채색을 구사해 화려하고도 신비로운 채색화의 세계를 구축했다. 전통 안료인 분채(고운 흙에 안료를 섞어 만든 물감)와 석채(색을 내는 광물을 분쇄해 만든 물감)를 사용해 전통지에 반복적으로 겹쳐 올린 색상은 밑에서부터 우러나는 묵직한 발색으로 몽환적인 세계에 깊이를 부여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천경자의 원래 이름은 ‘옥자’였다. 외할아버지가 옥구슬처럼 어여쁜 손녀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열일곱 살이 되던 1941년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도쿄여자미술대학) 유학 때부터 ‘경자’라고 이름을 바꿔 사용했다. 전문학교에서 데생과 채색화를 공부한 그녀는 졸업 후 파리로 건너가 아카데미 과정을 거친 후 귀국했고, 1955년 대한미술협회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한국화단의 스타가 됐다. 동양화가이면서도 대담하게 밝은 색채를 사용한 까닭에, 한때는 “일본에서 공부해 지나치게 왜색물이 들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올곧은 작가적 신념은 그녀를 해방 이후 한국 미술에서 중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동력이 됐다.

◇천경자 作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천경자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서울특별시 저작권 소유.

■‘좀 고약한 예술가’의 자서전 같은 그림

천경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여성들에게 매우 보수적이었지만 그녀는 세계 일주에 나설 만큼 진취적이고 자유분방했다. 상당한 애연가였음도 물론이다. 담배에 대한 애정은 그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그의 작품엔 꽃과 여인 못지않게 담배가 특별한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절친 사이였던 소설가 박경리는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시 ‘천경자’)라며, 애연가 천경자에 방점을 찍은 바 있다.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한 작가는 꿈과 사랑, 환상에서 비롯된 애정과 한을 주제로 붓을 들었다.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거나 동식물로 표현되거나 상관없이,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작품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천경자의 전시는 자전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자기 고백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전시 중인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가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환상의 드라마’, ‘영혼의 여행자’, ‘자유로운 여자’라는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천경자 作 '노오란 산책길'(198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모델은 자신과 해외스타 그리고 며느리

전시작인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년)는 천경자의 대표적인 자화상이다. 여인은 그녀의 상징인 뱀을 화관처럼 머리에 쓰고, 붉은 장미 한 송이와 함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하얀 동공의 눈동자는 금빛으로 표현했고, 푸른빛의 그림자 가득한 눈매에는 광기가 서려 있다. 유난히 무표정한 얼굴에 긴 목의 여인은 강렬하고 섬뜩한 마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녀의 눈동자는 분명히 응시하는 대상이 있다기보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은 고독한 여인을 달래는 수호신이면서 동시에 천경자 자신이다.

한편 ‘화병이 된 마돈나’(1990년)는 유명 스타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스스로의 모습에 환상을 덧댄 여인을 그렸던 천경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좋아했던 유명 스타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마릴린 먼로에 이어 팝의 여왕 마돈나를 소재로 선택한 작품에는 꽃을 가득 꽂은 화병에 매혹적인 마돈나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자신이나 구체적인 인물에 특정한 스토리와 감정을 덧씌우던 화백은 어느 순간 딸과 며느리를 모델 삼아 그리기도 했다. 올 6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한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에 선보인 ‘노오란 산책길’(1983년)의 모델은 첫째 며느리인 유인숙이다. 작가는 자신의 홈드레스를 그녀에게 입히고 자신의 반려견 꽃순이까지 화폭에 그려 넣었다. 그림의 주인공 유인숙은 2019년 펴낸 ‘미완의 환상여행’에서 이렇게 술회한다. “커피를 가져다 드리고 나오려는데 어머니가 부르셨다. ‘인숙아’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보셨다. ‘거기 서 볼래?’ 나는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서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어머니의 모델이 되었다.”

■전설이 된 화가의 ‘그림 같은 인생’

배우가 되고 싶어 했고,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천경자에게 그림은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또 그림은 평생의 망명지였고 그녀는 슬픔의 망명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이국에서 맞이한 죽음까지도 망명객의 최후처럼 미스터리했다. 혼신을 다해 품었던 여인들의 슬픔은 화려함과 아름다움의 극치에서 피어난 꽃이었고, 그녀들을 닮은 그녀는 한 시대를 아름답게 채색하며 고독과 기쁨, 슬픔, 한을 넘어 영원한 전설이 됐다.

퍼블릭아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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